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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태풍에 꺾인 「그때 그사람」 뭘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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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랑… 수감… 칩거… “권력무상 실감”/「6공 황태자」 박철언씨 옥중불평/박준규씨 반YS세 규합설… 김재순씨 “토사구팽” 울분/박태준씨 「포철친구」에 반감… 김종휘씨 모친상도 불참
김영삼 정부 1년은 개혁·사정의 질풍노도 시기였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부침정도도 자못 심했다.
5,6공 때만해도 날리던 정치인들이 하루 아침에 추풍낙엽 신세로 전락했고 김 대통령을 음양으로 도왔던 이들도 개혁·사정의 희생양이 되어 암담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표적사정」 「보복사정」 등의 용어도 다 이들 정치인들의 정리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선 이들중 권력무상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준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고종사촌으로 「떠오르는 태양」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의원(국민). 그는 슬롯머신업자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그는 주로 자신을 동정하는 편지에 답장을 쓰고,독서하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측근은 『박 의원 수감생활 2백10여일동안 약 3천통의 편지가 쇄도해 답신하는데 비서들까지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무릎관절염과 협심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지난 21일 함세웅신부와의 면회에서 『개혁을 한답시고 특정인을 보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없는 현재가 없는 만큼 이제 과거와 현재가 손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여기 한때 6공 후계자로까지 부상했던 「철의 사나이」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도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 대선때 김 대통령의 간절한 도움요청을 뿌리쳤던 그는 김 대통령 취임직후인 지난 3월초 일본 동경으로 「도피」했다. 그런 가운데 그는 포철 협력업체 등으로부터 3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중지 상태에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세금체납 때문에 자택과 오피스텔을 압류당했다.
그는 최근 『포철 친구들이 소위 개혁세력과 짝자꿍이 되어 나의 이력을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 가장 충격적』(『한국논단』지와의 회견)이라고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는 일본에서 치질수술을 받는 등 한때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요즘은 술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최근 그를 만나고온 한 측근은 전했다.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양 박씨와 함께 「표적사정」 시비를 일으켰던 6공의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의원(무소속)도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복역중이다.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인 그가 수감되자 주변에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돈관계가 비교적 깨끗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 그는 수감생활을 주로 일본어 독학과 경제학·사학공부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6공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맡았던 김종휘씨도 율곡사업비리의 혐의로 미국에서 떠돌이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카네기재단의 연구원으로 미국에 건너갔으나 워싱턴에 머무르지 않고 친지들의 집을 전전하고 있으며 얼마전 모친상을 당하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동화은행사건 수사도중 돌연 일본으로 출국,「봐주기 사정」 의혹을 일으켰던 이원조 전 의원은 계속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때 김 대통령을 적극 도왔던 그는 지금 당뇨병과 정신쇠약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박철언·박태준·김종인씨 등 일부에서 주장하는 「표적사정」의 대상들이 신체적인 구금상태 또는 해외 떠돌이신세가 된 것과 달리 대선때 김 대통령편에 섰으나 더 좋은 세상을 맞지 못하고 날갯죽지가 꺾여 추락한,즉 「토사구팽」의 대표적 예는 박준규·김재순 전 국회의장.
축재와 관련,물의를 빚자 의장직을 사퇴한뒤 도미했다가 지난 가을 귀국한 박씨는 최근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내고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또 TK(대구·경북) 출신 의원들과도 접촉,「반YS세」를 규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역시 재산공개 파동으로 의원직을 버려야했던 김씨도 귀국 두달만인 지난 27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내년 1월말까지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에 머무를 계획. 그는 「토사구팽」이란 말을 내뱉던 당시의 울분을 여태까지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재산공개로 민자당 의원직을 내놓았던 유학성씨는 자택에서 칩거중이며,대학운영 비리혐의로 구속까지 된 김문기 전 민자당 의원은 간·위장 질환이 악화돼 서울구치소 의무실 신세를 지고 있다.
또 재산문제로 민자당을 탈당한 정동호의원(무소속)은 대만 정치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지난 봄부터 계속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의원직을 고수해 빈축을 사고 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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