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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3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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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국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명인 진(晋)나라의 문공(文公)은 19년이나 방랑생활을 했다. 그가 제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강(姜)씨 부인과 결혼해 즐겁고 편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문공이 "일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이곳에 뼈를 묻을 작정"이라며 허송세월을 보내자 부인은 "즐거움과 편안함이 이름을 망친다(懷與安 失敗名)"며 다그쳐 춘추오패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회(懷)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안(安)은 편안함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즐겁고 편안함에 머물러 더 뜻있는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의 '무사안일'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중국 고사(故事)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는 다운시프트(Downshift)족은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다운시프트는 자동차 기어를 저속으로 변환한다는 뜻이다. 다운시프트족은 번듯한 직장과 도시 생활, 즉 돈과 성공을 버리고 시골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안락하게 살겠다는 사람들이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무사안일이 암적인 존재다. 변화를 두려워해 일을 하지 않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하는 보신(保身)주의이기 때문이다. 무사안일형은 어느 조직에나 있지만,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적고 신분이 보장된 공직사회에 더 많은 편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유행한 '복지부동(伏地不動)'은 무사안일의 진화된 형태다.

복지부동은 전투상황에서 은폐를 위해 땅에 바짝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의 군대 용어다. 당시 사정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아예 일손을 놓아버린 공직사회를 꼬집는 말로 등장했다. 꼼짝하지 않되 권력의 향방을 살피기 위해 눈만 굴린다는 '복지안동(伏地眼動)'이란 변형도 나왔다.

요즘 관가엔 한 걸음 더 나아가 '삼불(三不)'이란 말이 나돈다고 한다.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소문과 관련된 여자 경찰이 좌천되고, 외교부 직원들이 청와대 방침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다고 장관이 경질된 사태 때문이라고 한다. '삼불'은 옛날 어머니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신신당부하는 시집살이의 행동수칙이었다. '참여'정부 공무원들의 새 보신책이 '삼불'이라니 아이러니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