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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곡물메이저 UR 타결 맞아 시장선점 각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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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우루과이 라운드(UR)의 농산물 협상에 국민들의 관심이집중되면서 언론에는 심심찮게「곡물메이저」에 대한 언급들이 등장하고 있다.
곡물메이저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우리가 일상적으로먹는 밀.콩등 곡물의 많은 양은 이들 메이저의 손을 거쳐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며,우리 농가의 가축에 먹 이는 대부분의사료 또한 이들에 의해 공급된다.
곡물메이저로는 흔히 5개 회사를 꼽는다.즉 美國의 카길과 콘티넨틀,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LDC),南美의 분게,스위스의 앙드레를 말한다.
이들 5대 곡물메이저들은 전세계 곡물교역량의 절반 이상을 움직이고 있다.세계최대의 곡물수출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이들 5개사는 전체 곡물 수출량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우리나라 곡물공급량의 약30%를 대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조 직을 이루고있다. 이저들은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각지의 농산물 생산지나 시카고 先物거래소등에서 다량의 곡물을 매입,곡물을 사고자 하는 정부나 기업에 이를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있다.곡물매매의 중개역할뿐 아니라 산하에 선박회사까지 소유하면서 곡물의 수송까지도 맡는다.
이들이 1세기에 걸쳐 세계곡물업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곡물의 배분.가공 중심지에 위치한 하역.선적.저장 시설등 유통과정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곡물업자들은 이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메이저들은 공통적으로 기업을 공개하지 않은 비상장 회사들로 창업주의 가문들이 대를 이어가며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카길의 카길家와 맥밀런家,콘티넨틀의 프라이버그家,분게의 본家와 허쉬家,LDC의 루이 드레퓌스家,앙드레의 앙드레家등 7개 가문은 세계곡물시장을 지배하는「곡물왕가」로 통한다.
메이저들의 기업경영이 철저히 혈족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모든 거래에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써야 한다』는 곡물업계의 오랜 전통에서 나왔다.곡물시세가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돈과 직결되는 곡물에 관한 정보는 철저한 보안이 유 지돼야 하며,건당 수백만 또는 수천만달러씩 오가는 곡물거래에서는 믿을 수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불문율로 정착된 것이다. 일가가 아닌 사람을 믿었다가 배신당한 사례로 곡물업계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티넨틀은 2차대전 직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미지사를 설립하면서 곡물거래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던 이집트출신의 마크 나자를 파견했다.나자는 그곳에서 성공을 거듭하자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싶은 욕심이 생겼다.그는 콘티넨틀 지사일은 팽개 치고 51년「콘티마」라는 자신의 곡물거래회사를 차리고는 콘티넨틀의 거래선을모두 자신의 회사로 돌렸다.콘티넨틀은 얼마후 남미지역이 완전히비어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로부터 9년뒤 나자는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하던중 추락사고로 사망했다.곡물업계에서는 한동안 배신자의 비참한 말로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곡물메이저들의 활동과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이들이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곡물을 얼마에 팔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그나마 곡물메이저들에 관해 세상에 알려진 단편적인 정보들도 모두가 정부발 표나 거래관계를 역추적해 얻어낸 것들이다.
심지어 분게는 74년 9월 분게의 사장 요르게 본 형제가 납치됐을 때 이들이 풀려날 때까지 근6개월 동안이나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도 했다.
곡물메이저들의 또다른 특징은 무국적성이다.이들에게는 국가나 이데올로기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기업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카 길은 현재 세계 54개국에 6만3천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며 다른 메이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냉전이 극에 달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 이들 메이저들은 철의 장막을 넘나들며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거래를 했다 . 지난 76년 蘇聯에 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美國정부는 소련정부에 대해 소련産 석유를 국제시세보다 싼 값에 넘겨주면 식량을 팔겠다고 제의했다.미국으로서는 소련의 다급한 식량사정을감안,소련이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소련은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곡물메이저들이 미국의 등뒤로 소련에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곡물메이저들은 거대한 사업규모만큼이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세계 곡물시세가 이상적인 변동을 보일 때 전문가들은 메이저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일부에서는 메이저들이 UR농산물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막후에서 이끌어가 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메이저들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76년 자이레에 대한 콘티넨틀의 소맥공급 중단사태다.
당시 자이레 정부는 경제난 때문에 콘티넨틀에 대한 소맥대금 지불을 1년 가까이 미루고 있었다.참다 못한 콘티넨틀은 자이레정부에「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존 윌리엄스 당시 자이레 주재 美농업담당관은 76년12월 농무부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그들은 자이레行 소맥을 딴 곳으로 돌려 자이레 정부에 대해 소맥이 이곳 국민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려주려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곧 자이레의 빵집들 앞에는 줄이 늘어서게 됐으며 밀의 매점매석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이 생겨났다.결국 자이레 정부는 얼마후 콘티넨틀에 두 손을 들어버렸다.자이레는 이제까지의 소맥판매미수금을 매달 갚아나가는 한편▲앞으로 소맥판매대 금은 중앙은행에서 현금으로 지불하고▲미국의 소맥만을 수입하며▲자이레의 밀가루는 콘티넨틀社가 독점하는등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였다.일개기업이 식량을 무기로 외국정부를 굴복시킨 것이다.15일을 협상시한으로 정해놓고 막판 의견조율에 들어간 UR가 타결되면 세계각국의 농업시장은 빗장이 풀리게 된다.이를 신호로 5대 메이저를 비롯한 세계 곡물상사들은 각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
〈李碩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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