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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검거소식에 「누명경관」가족들 눈물만…/“억울한 고생”누가알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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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집 팔아가며 6명이 “무죄” 추적/당시 투숙객 증인 찾아 새벽까지 헤매/탄원서·증거자료들 산더미/법의학·형법등 밤새워 독파/확보한 증거 30개 검경묵살
『천지개벽이 따로 있습니까. 죄없는 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들어 가족들조차 손가락질 받게 해놓고 이제와서는 진범이 잡혔다니…』
살인범으로 옥살이중인 김기웅순경(27)이 누명을 벗고 풀려난다는 소식(중앙일보 10일자 23면)에 일가족 12명이 10일밤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지만 모두들 웃지도 울지도 못한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1년간 모두 힘을 합쳐 김 순경의 무죄를 확신하며 나름대로 「수사」를 해온 「동지」였기에 잘못 행사된 공권력으로 산산조각나다시피한 가족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집안전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9일 오후 변호사로부터 진범이 잡혀 누명을 벗게 됐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은 어머니(60)는 한동안 넋을 잃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고 했다.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린뒤 관절염이 생기고 왼팔에 마비증세까지 나타났지만 아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내속으로 낳은 자식도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죄가 없다는 것은 눈빛으로 알았지요.』
사건발생 5일후 처음으로 김 순경과 접견하던 날,부모와 누나·형 등 가족들은 한결같이 눈빛만 보고도 무죄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누명을 벗기기 위한 가족들의 「한몸 한마음작전」이 시작됐다.
여관 숙박부를 뒤져 사건당일 묵었던 사람들과 숨진 이양 주변인물과의 관련성을 탐문하고 추적하느라 새벽 1∼2시에 귀가하기 일쑤였다. 청와대 등 관계요로에 탄원서를 내고 무죄 증거자료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류만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둘째누나(32)는 비용 등을 대기위해 40평형아파트를 팔고 20평짜리로 옮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심혈을 쏟은 것은 법의학 등 생소한 분야와의 싸움이었다. 다행히 생물교사인 둘째 자형(34)을 중심으로 큰누나(34),형(30) 내외가 함께 법의학·법치의학·약물학·형사소송법·형법·판례집만 20여권을 읽었다.
『한살바기 등 어린아이 넷을 집에 두고 어른 여섯명이 몽땅 매달렸지요. 부부간도 생이별이었어요.』
김 순경의 큰자형(36·고교 교사)의 말에서 검·경찰과 사법부가 한 젊은이와 가족에게 1년여동안 안겨준 아픔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온갖 노력끝에 사망 추정시간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무죄증거를 30가지 이상 확보했으나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2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가족들은 상고심을 기다리면서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모두 가톨릭신자여서 믿음이 더욱 굳었는지도 모른다.
『수사기관이 가혹행위를 하고 주변수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법원이 선고전에 예단을 하는듯한 태도는 지양해야 마땅합니다.』
이들은 검·경찰이나 법원에서 조금만 성의껏 비전문가인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만 제대로 검토했더라도 이같은 한 가정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수원=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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