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최후 승부수로 “쌀담판”/김 대통령­클린턴 전화회담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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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정기간 수입동결」 관철이 초점/우리 특수성 설득 성과는 미지수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7일 전화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관련한 한­미 양국간의 쌀시장 개방문제와 북한측의 새로운 「핵」 제의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30여분간에 걸친 심야 전화접촉은 기본적으로는 북한 핵문제 협의를 위한 것이었지만 김 대통령으로서는 쌀문제를 보다 주요한 현안으로 취급했다.
외신들은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통화를 북한 핵에 맞추어 보도하고 있으나 청와대는 쌀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짐작이 간다. 쌀문제에 관해 침묵만 지켜와 비판을 받아온 김 대통령이 비로소 공개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대사에 불만토로
김 대통령은 쌀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지난 3일 레이니 주한 미 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한국민에게 쌀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쌀문제로 반미 감정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며 미국의 대아시아정책 전반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음을 역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레이니 대사로부터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한 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대화주선을 요구했고 이러한 곡절끝에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양국 정상간의 「담판」이 이뤄진 것이다.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는 대선공약으로 발목이 잡혀 후끈 달아오른 김 대통령으로서는 클린턴 대통령과의 전화담판이 마지막 카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날 전화접촉에서 앞서 뭔가 양측간에 사전조율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관측이 있었으나 결과발표에선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김 대통령은 쌀수입의 일정기간(3∼5년) 동결을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대통령이 본국의 훈령을 받기 위해 귀국중인 에스피 농무장관에게 얼마만큼의 양보카드를 들려 보낼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한국을 궁지로 몰아넣을 경우 김 대통령 정부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며 이는 미국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내용 더 진전예상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양국 협상대표단이 두 정상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다시 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보다는 진전된 결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외없는 관세화를 강조해온 미국으로선 한국만을 예외로 하여 특혜를 줄 경우 다른 나라와의 균형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관세화 유예기간을 늘려주거나 최소 의무수입량 비율을 낮춰주는 쪽의 배려가 있을 것 같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신통치않은 발표내용으로 보아 별 무성과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일정기간의 수입동결을 받아낸다면 정치적 압력을 벗어날 수 있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해볼 때까지는 해보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긍정적인 면도”
한편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측의 제의가 불충분하고 미흡하다』면서도 『우리측이 반응을 보여야 할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협상에 나설 의향을 내비쳤고 김 대통령도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제의 가운데 의혹의 대상이 되는 미신고시설 두곳에 대해서는 언급이 일절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클린턴 대통령이 미 국가안보회의(NSC)의 검토를 거쳐 이러한 의사를 밝혀온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중단 사태를 일단 막아보자는 뜻으로 보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유엔안보리로 끌고가 강경 제재조치를 취할 경우 군사적 충돌을 포함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북한 핵의 완전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무력충돌만은 피해야 한다는 한미의 어려운 입장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이 한미 양국의 이같은 대화를 통한 해결노력을 악용할지 모를 상황을 예상,『미국은 북한 핵해결에 강하고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중단됐던 미­북한간의 접촉(3차)이 머잖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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