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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개방시대… 우리의 갈길은(긴급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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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기계화영농·품종개발 서둘러야/「감정」보다 경제적 접근을/개방따른 관세이익 농업에 재투자/이중곡가 폐지·기업농 모색해 볼만
그동안 「쌀개방 절대불가」라는 입장을 견지해온 정부는 미국과의 농산물 양자협상에서 조건부 쌀시장 개방을 수용했다. 이에따라 새로운 무역질서속에서 「쌀개방시대」를 맞은 우리 농업의 좌표를 다시 설정하고 농촌의 활로를 모색하는 문제가 긴박한 관심사로 등장했다. 차동세 산업연구원 원장과 정영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을 6일 오전 본사로 초청해 긴급 대담을 갖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쌀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들어봤다.<편집자주>
○개방­고립의 기로
­차 원장:애당초 UR문제는 우리에게 세계경제의 개방체제 속에서 발전하느냐 아니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서 탈퇴해 고립하느냐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런점에서 정부와 국민은 UR를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힘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경제·비즈니스 문제로 인식해 냉철한 손익계산을 통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쌀을 포함한 농업정책을 새로 정립해야 합니다.
­정 원장:국제간 교섭은 궁극적으로 자국의 경제발전과 복지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줄건 주고 받을건 받는 이해쟁탈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UR의 숱한 난제들중 우리가 쌀문제에 그토록 집착했는가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정부의 협상추진 전략의 문제를 넘어 우리에게 하나의 상품으로만 볼 수 없을 만큼 쌀이 지니는 중요성과 의미가 컸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현실을 보면 농가소득의 24%가 쌀이고 농업소득중 43%가 쌀소득입니다. 일본만 해도 농가소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지요. 이에 따라 쌀이 우리 농민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에대한 국민의식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 달리 그동안 우리는 쌀과 관련한 정책에서 수매가와 수매량에 매달리는 등 쌀의 정치상품화에만 머물렀습니다.
이로인해 농촌사정의 어려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쌀값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하나의 국민정서로 자리잡게 된 것이지요. 일전 TV토론의 시청자 여론조사에서 정부 수매가안에 찬성하는 비율이 19%에 불과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결국 쌀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과 일반국민들의 인식사이의 차이를 메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절대불가”는 불가
­차 원장:쌀시장 개방과 UR와 관련해 그동안 정부와 국민들이 임해왔던 자세에 대해 두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국제화는 국익차원에서 세계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점과 또 국제화 정책은 합리적인 계산에서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나온 것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즉 우리 고집만 내세울수 없고 내세우지 않겠다는게 국제화인 셈이지요. 이 점에서 우리가 그동안 세계경제의 흐름을 외면하면서 절대로 쌀개방을 할 수 없다고 고집해온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차피 쌀시장 개방이 굳어진 이상 농업정책은 이제부터라도 경제적인 논리에 기초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 하고 긍정적인 요인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쌀시장 개방과 관련해 쓸데없는 국력을 낭비하기보다 정부가 앞장서 UR의 테두리 안에서 UR가 농업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농업경쟁력을 키우는데 시급히 나서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획기적 지원필요
­정 원장:농업문제가 감정이나 정서·연민보다 경제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는데 동감입니다. 그러나 그 점에서 부연할 것이 있지요.
현 시점에서 농업을 경제논리에만 맡겨놓을때 시장의 실패없이 잘 돼 갈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선진국에서도 농업문제를 경제논리로만 대처하지는 않습니다. 농업문제에 대해 우리의 쌀값이 국제가격의 4∼5배나 되는데 왜 붙잡고 있었는가라는 식의 단순인식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이를 국제가격의 2∼3배까지로 낮추는 방식을 통해 농업은 유지돼야 합니다.
결국 우리농촌은 기계화와 수리시설의 현대화·품종개발 등 정부지원정책을 통해 구조개선이 돼야 살아남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농촌의 역할과 기능도 단순한 식량공급기지라는 좁은 시각에서 보기보다 다양한 산업이 입지하고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 풍요한 국토공간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역할분담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앞으로 UR타결 후 이같은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탈농촌현상은 더욱 심각해져 결국 농촌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부담을 초래할 수 있지요.
­차 원장:농촌문제를 정치문제에서 경제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해서 농촌에 대한 지원을 없애고 무조건 경제적으로 풀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원을 하더라도 경제논리에 맞게 해야지 생색용으로 하면 안되고 단순한 소득이전보다는 시장기능과 부합시켜 농업을 하나의 산업이라는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농민을 정부에 의존해 사는 계층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지원정책을 펴야 합니다. 예를들어 무공해 유기농법을 도입해 고부가가치 농산품을 생산한다거나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등 농업을 하나의 수익성있는 산업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 원장:UR협상이 타결되면 15개 농산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쌀이면 쌀,쇠고기면 쇠고기가 언제 몇% 개방된다는 식이 될 것이므로 앞으로는 농업에서도 품목별로 구체적이며 다양한 「정책 패키지」가 필요할 때입니다. 이제는 국민적인 합의하에 우리경제를 재편성하는 차원에서 농정을 펴야 합니다.
이를위해 우선 쌀시장 개방에 따른 관세상당치(TE:국내가와 국제가 차액만큼의 관세율)를 농업분야의 투자에 할당하거나 교육세·방위세처럼 특별세를 시한부로 만들어 전문경영농가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합니다.
또 현재 쌀값이 도시가구의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하므로 전면적인 이중곡가제는 철폐해 저소득가구에만 한정지원하는 대신 나머지 재원은 농업구조 개선사업으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규제완화가 필수
이제 개별농가(가족농)만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어차피 외국의 농업기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들어오게 되므로 이제는 기업의 농업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점차 없애야 합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쌀시장 개방반대운동이 UR타결 후 거부투쟁으로까지 연결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차 원장:UR이후 농업과 서비스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는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정책도 필요합니다. 당장 개방경제하에서는 농지소유 및 거래에 대한 규제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경자유전이라는 비경제적이고 비시장적인 규제는 농민이 땅을 팔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에따라 앞으로 농촌을 농업만을 위한 곳으로보다는 관광농업 등 도시인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개발하는 등 새로운 흐름에 맞는 국토개발 전략차원에서의 농촌정책을 마련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정 원장:농지문제는 보전과 개발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게 중요합니다. 지난 7월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해 농지 2백10만㏊중 1백10만㏊와 산지 6백50만㏊중 2백만㏊를 합쳐 3백10만㏊(국토의 31%)를 타용도로 쉽게 전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중앙정부에만 토지이용계획만 있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세부 토지이용계획이 없어 그 효율성이 의문시 됩니다.
­차 원장:결론적으로 UR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괴물도 아니고 선진국의 압력수단도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제협의체지요. GATT의 원활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참여해 타결짓는 것이고 우리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UR타결은 거시경제적으로 발효이후 약 3년간에 걸쳐 우리에게 수출이 50억달러 늘고 수입이 5억달러 늘어 45억달러의 국제수지 개선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의 아픔이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요. 특정산업 분야의 피해가 예상된다해서 집단이기주의나 감정적으로 대응해 국익에 피해를 준다거나 경제발전의 마이너스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 원장:7년간 끌어온 UR가 타결되는 단계라고 볼때 냉엄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UR가 수출중심 산업에는 이익이 발생해도 농업에 있어서는 손실발생이 확실하다고 볼때 득실계층간 상호관계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조정할 것인가가 고려돼야 합니다.<정리=김동균·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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