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놀라운 아이들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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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눈(雪)을 볼 때면 2~3년전 딸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혼자 웃음짓곤 한다.지금은 6살난 딸아이가 서너살때로,한창 말을배워 신나게 할 무렵이었다.그날은 토요일이라 느긋하게 집에서 텔리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그 때는 鎭海에 살고 있을 때라 눈을 보기가 귀했었는데 몇년만에 펑펑 내리는 것이었다.
창밖을 보던 큰딸이 『눈은 참 고단하겠다』하는 것이었다.잘 이해가 안돼『왜』하고 물으니 『눈은 설악산에도 와야하고 진해에도 와야하고 서울에도 와야하니까 얼마나 바쁘고 고단할까』했다.
그 얼마전 설악산에 휴가갔었을 때 보았던 눈에 생각이 미쳤던모양이었다.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습기도 했지만 대견한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무렵의 크리스마스때 이야기다.평소 가지고 싶다고 기도하던 장난감을 산타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잠든아이의 머리맡에 며칠전 아내와 함께 사다가 장롱속에 감추어두었던 선물을 갖다 놓았다.이 때 아이가 첫돌때쯤 기저귀회사에서 사은선물로 주었던 빨간 산타모자가 딸려나왔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선물을 본 아이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우는 것이었다.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산타할아버지가 큰일났어,아빠.우리집에 오셨다가 모자를 잃어버리고 가셨는데 어떡하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산타할아버지! 모자 우리집에 있어요.걱정마시고 얼른 가지고 가세요』하고 외쳐댔다.너무 오래된 모자라자기것이었던 기억이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래서 그것도 할아버지가 주고가신 예쁜 모자라고 대충 둘러대 달랬다 .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항상 이런 순수함과 상상력을 잃지 않도록 책도 읽어주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줘 잘 키워야지 하고다짐했는데….부대에서 퇴근을 못하고 있을 때면 딸들 목소리라도듣고 싶어 자주 전화를 한다.
전화를 통해 들리는 달콤한 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에 가면한번 더 안아주어야지 하고 다짐도 하게 된다.그런데 막상 퇴근하면 10분도 못돼 천방지축으로 뛰는 녀석들이 성가시게 느껴지니….그래도『누구 딸?』하고 물으면 항상『아빠 딸』하고 외치는우리딸들.아내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역시 우리는 피로 맺어진 불독삼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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