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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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 어머니(46)차가운 얼굴로 지상은요시코를 내려다보았다.입술을 깨물면서 그는 많은 것을 참으려고애썼다.이 여자를 좋아했었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좋아했었다.무엇보다도 그녀는 아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가지고 있었다.만지면 깨어질 듯 가냘퍼 보이는 모습부터가 그랬다.어딘가 강해 보이고 누구와 만나도 질 것같지 않은 그런 믿음을 주는 은례와는 달랐다.
커다란 눈이며 조그맣고 흰 얼굴을 받치고 있는 그녀의 가늘고긴 목도 낯선 아름다움이었다.그것은 지상이 알고 있던 어떤 여자에게서도 만나지 못했던 황홀함이었다.그녀를 바라볼 때마다,그것만으로도 지상은 기쁨을 느꼈었다.요시코는 그렇 게 지상에게 새로웠다.
그녀를 만나며,무언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면서,그녀의 모습에 황홀해 하면서 지상은 이따금 스스로에게 물었었다.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나는 지금 한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그런데도 왜,아내에게 잘못을 저지르 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는것만으로도 기쁨에 들뜨는 것일까.고향에서 혼자 몸으로 고생을 하는 아내가 아닌가.이제 얼마 있으면 아이를 낳을 그녀가 아닌가.그런데도 왜 아무 느낌이 없는 걸 까.
그녀는 여자가 아니니까.내가 생각해왔던 어떤 여자의 모습도 아니니까.스스로도 어이없어 하면서 지상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자신이 품어왔던 여자로서의 어떤 모습도 요시코는 가지고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마른 풀들이 널려 있는 어둠 가득한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요시코에게 지상이 말했다.
『가요.어두우니까 제가 저쪽까지만 바래다 주도록 할게요.』 둘은 천천히 걸었다.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풀숲에 가득했다.벌레들의 울음소리는 그들의 발자욱 소리가 가까워 가면 잠시 그쳤다간 다시 이어지곤 했다.아주 먼 곳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처럼 그렇게 지상은 그 소리를 들었다.
옆에서 걷고 있는 요시코의 발소리를 들으며 지상은 스스로에게중얼거렸다.다만 하나…이번 일로 안게 있다,요시코.너와 나,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거다.그 무엇도 함께 할 수 없는,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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