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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환희와좌절>1.보스턴마라톤 銀 김재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93년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올해에도 스포츠계엔 많은 빅이벤트가 펼쳐졌다.올시즌 환희.좌절의 순간을 출전감독이나 선수의 회고를 통해 조망해본다.〈편집자註〉 내 생애에 제97회 보스턴마라톤대회처럼 42.195㎞의 마라톤 풀코스가 짧게 느껴질때가 또다시 있을까.
2시간이 넘는 머나먼 레이스에서 10초차,거리상으로는 약 40m가량 뒤진끝에 월계관을 내주는 통한을 맛봤으니 말이다.
徐潤福(47년)咸基鎔(50년)등 대선배들의 잇따른 우승으로 국내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보스턴마라톤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지난 4월20일 새벽(한국시간).
지난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에의 지나친 욕심이 악재로작용,10위에 머물고 말았기에 이번엔 그야말로 입상권에나 들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레이스도중의 복잡한 생각 역시 에너지 소모여서 골인지점과 옆선수 파악에만 신경을 썼다.
15명정도로 형성됐던 선두그룹의 균형은 코스후반인「Heartbreak Hill(깔딱고개.26~34㎞)」에서 깨졌다.
나와 나미비아의 루케츠 스와트부이가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둘 사이의 지나친 따돌리기 경쟁으로 엄청난 힘이 소진됐다.
魔의 언덕후반 내리받이 길을 달리며 쥐가 나기 시작한 나는 스와트부이를 시야에서 놓치지않는 약 2백m거리를 유지하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스피드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종반 대역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38㎞지점에 이르렀을때 느닷없이 제3의 사나이 코스마스 엔데티(케냐)가 믿기지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나를 추월,쏜살같이 내빼는 것이 아닌가.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관중들의 갈채와 환호성등 열띤 응원으로나는 바짝 뒤쫓아왔던 엔데티의 숨소리는 커녕 발소리도 듣지 못하는등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었다.
스와트부이 추격만을 노리던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이제까지 달려온 길이 허망하게만 느껴졌다.
순간 마라톤의 승자는 1위가 아니라 완주자란 평소의 믿음이 솟구쳤다.
그렇다,달리자.
스와트부이라도 따라잡자.
마침내 40㎞를 넘어선 지점에서 스와트부이를 따돌렸을때 나는또한번 놀랐다.
준마같던 엔데티가 가시거리에서 헐떡거리는게 아닌가.
나머지 1㎞여는 어떻게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추격하는 나를 뒤돌아보고 공포에 질려가는 엔데티를 죽어라 쫓아 달렸다.
1백50여m의 거리가 한발한발 좁혀졌다.
후발주자에게 느닷없이 선두를 뺏겼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투지가샘솟았다.
아,그러나 벌써 골인지점이란 말인가.
조금만 더 코스를 연장했더라면 충분히 따라잡을수 있었을텐데…. 섭씨 25도 가까운 더운 날씨에 2시간9분43초(2위)는 엄청나게 좋은기록이라는 주위의 격려가 따랐지만 사라진 우승의 꿈은 어디서 찾아야하는 것일까.
멀기만했던 1백리길이 정말 너무도 짧은 아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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