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힘쓰는 사학(선진교육개혁: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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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학운영도 회사 경영처럼/등록금보다 사업 이익 더 많아/미 교수들 수익사업 앞장선다/전문회사 만들어 해외투자도/하버드
하버드 경영회사(Harvard Management Company:HMC). 미국 하버드대에 소속된 이 회사는 74년 설립됐다. 하버드대에 맡겨진 기부금·연금 등을 관리하는 HMC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92년말 현재 4조9천6백억원(62억달러).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막대한 자산이다.
물론 부자나라의 일류 사립대니까 한국대학의 실정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다. 그 돈을 만들고 지키고 불리는데 그들이 쏟는 정성이 중요하다.
HMC는 이니어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전쟁영웅)라는 이름의 투자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니어스는 하버드를 대표해 벤쳐 캐피틀(모험자본)·부동산분야부터 석유·천연가스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만한 곳엔 가리지 않고 투자한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투자 전문가들이 미국은 물론 동아시아·남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듯이 돈벌이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풍족한 여건에 대해 「원래 돈이 많은 학교니까,학부모나 동창들이 기부를 많이 하니까,게다가 등록금이 비싸니까 당연하다」는 식으로 지레 짐작하는 것은 오산이다. 어렵게 모은 돈을 한푼이라도 더 장학금·연구시설·교수복지에 투입하고자 그늘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하버드대의 수입중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31%. 학부생의 경우 92∼93학년도의 1년간 수업료는 한사람당 1천3백16만여원(1만6천4백54달러) 수준이다. 이 금액만을 받아 하버드대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일류 교수들을 유치하려는 대학간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 우리 하버드도 교수 급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연구환경을 위한 추가 투자는 물론 새로운 시설과 서비스도 제공해야 했다.』
하버드대의 지난해말 결산보고서에는 HMC를 비롯한 「하버드 경영맨」들의 1년간 노력이 집약돼 있다.
9천4백여개에 이르는 기부처에서 모아들인 돈을 수익성·위험도에따라 선택적으로 운용(포트폴리오)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이봉규씨의 경험담.
『얼마전 모교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도 우리 대학 동문이니까 후배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학생이다. 돈이 없다」고 난색을 보이자 「그러면 1년에 10달러(8천원)씩이라도 내라」고 권유하더라고요. 할 수 없이 응낙했지요.』
하버드대의 92년 총수입 12억2천5백만달러(9천8백억원)는 등록금(31%)·연구 수입(25%)·기부금(28%)·기타 수입(16%)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학의 자체 수익사업이 활발한데다 학부모·동문·기업 등 돈이 나올만한 구석은 놓치지 않고 찾아다닌 결과다.
○일정액 내놓아야
이중 연구수입 부문에는 교수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오버헤드(over head) 비용」또는 「간접(indirect) 비용」이라고 불리는 항목이 연구수입의 대종을 이룬다. 많은 돈을 들여 모셔온 교수지만 대신 교수도 대학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 무언가 내놓으라는 철저한 상인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베헤드 비용은 대학·기업간의 산학협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예를들어 한 교수가 기업과 접촉해 연구프로젝트를 따낸다.
우리 돈으로 1백억원짜리 프로젝트라면 교수는 62억원(오버헤트 비용)을 대학에 따로 내놓아야 한다. 즉 기업으로부터 1백62억원을 받아 62억원은 대학에 제공하고 나머지 1백억원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MIT대의 경우가 이렇다. 오버헤드 비율이 61%인 스탠퍼드대는 61억원을 내놓아야 한다.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싱클 레어 교수의 말.
『2년전까지만해도 오버헤드 비율이 무려 78%였습니다. 다른 대학과 비교해도 너무 부담이 커 교수들의 불만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대학당국과 협상끝에 비율을 61%로 낮추게 됐습니다. 그래도 오버헤드 문제는 항상 스트레스를 줍니다.』 MIT대는 특히 산학협동이 활발한 만큼 대학재정 수입중 연구수입 비율이 64%나 된다. 교수들의 피와 땀을 쥐어짠 덕분에 이 대학 수입중 학생들이 낸 등록금의 비율은 불과 16%.
지난해 국내 1백2개 사립대학 수입중 등록금비율(평균 74.7%)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몇년전 국내 중견 사립 S대에서 빚어진 해프닝.
학교당국은 교내의 노는 땅에 스포츠센터를 세울 구상을 발표했다. 재정난에서 벗어나 보려는 고육책이었다. 수영장을 포함한 헬스클럽을 꾸며 일반인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신성한 학문의 전당에 헬스클럽이 웬 말이냐.』
당장 학생들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말썽이 일자 대학당국은 사업계획을 곧 철회했다.
○등록금 비중 16%
대학은 이제 「경영」되어야 한다. 돈이 있어야 장학금도 나온다. 학교당국과 학생·일반인들도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한다. 대학총장은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그나마 국내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자체 수익사업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연세대가 짜낸 다양한 아이디어에는 적자생존시대를 앞둔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의 몸부림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동문회가 주도해 「대학카드」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비씨·비자카드 등 신용카드회사들과 제휴해 연세대 동문들이 그 카드를 쓸 경우 매년 사용액의 1%를 연세대에 내놓기로 한 것이죠. 「4백교회운동」도 추진중입니다. 국내 교회 4백곳이 우리 대학의 신과대 학생 4백명을 교회당 한명씩만 책임져 달라는 겁니다. 기독교 학교니까 가능한 일인데 현재 2백여 교회가 승낙했습니다.』(박우서 연세대 발전협력처장)
연세대는 또 우유회사(연세유업)를 본격적으로 차렸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에 공장을 새로 지었다. 우유를 팔아 연 1백억원의 재단 전입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선 연대가 모범
서울역앞의 세브란스 빌딩도 5년후 공사비용을 갚는대로 짭짤한 수입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교채도 발행했으나 올해 목표인 35억원에 훨씬 못미치는 20억원 가량의 실적에 그쳤다.
『불과 5년후부터는 대학 지원자 숫자가 줄어듭니다. 재정난으로 문닫는 대학이 나오겠지요. 정부 지원이 수입의 1%에도 미달하는 상황에서 사립대들이 살아날 길은 이 길 뿐입니다』라고 박 처장은 말했다.
대학교육의 수혜자이기도 한 정부가 쥐꼬리만한 예산지원에 그치는 현실은 심각히 재고돼야 한다. 일본의 사립대들만해도 예산의 10%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또 대학이 보유한 부동산에 대해 비업무용 토지라는 이유로 부과하고 있는 토지초과이득세는 재검토돼야 할 것 같다. 국립대에 대한 기부금에는 세금을 면제해주면서 사립대가 받는 기부금에 대해선 차별대우(소득의 5% 이내만 세금공제)하는 불공평한 세법 조항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가장 큰 과제는 역시 발상의 전환이다. 찬반 양론이 뚜렷이 갈라지고 있는 기여입학제 문제도 검토해볼만하지 않을까. 정부 지원과 자체 수익사업 확대 밖에 길이 없는 현실에서 대학들이 언제까지나 등록금·정원 증가 타령만하게 놓아 둘 수는 없다. 일단 길을 열어주고 나서 혹독히 교육의 질을 따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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