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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실적’ 뒤엔 ‘깜짝 경영기법’ 있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올해 2분기 기업실적 발표가 이어졌던 지난 7월 중순. 증권가는 LG그룹 계열사에 주목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그룹 계열사 전반적으로 실적부진을 겪었고, 일부는 올 1분기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2분기 들어 LG그룹의 전 계열사는 확연히 달라진 결과를 시장에 내놓았다. 전자·화학·통신 등 LG그룹 주력계열사들이 잇따라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구본무 회장의 CEO 교체가 최근 LG그룹의 실적호전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LG스킬올림픽’에 참가한 모습.

첫 테이프는 LG필립스LCD(LPL)가 끊었다. LPL은 7월 10일 매출 3조3550억원에 영업이익 1509억원(연결 기준)이라는 2분기 성적표를 발표했다. 매출은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고, 영업이익은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LPL의 흑자전환은 3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지만 LPL은 대규모 흑자를 달성하며 조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LG전자의 실적도 이에 못지않았다. LG전자는 분기 매출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하며 4636억원의 영업이익(글로벌 기준)을 기록했다. LG전자의 이런 실적 호전을 주도한 것을 휴대전화 부문이다.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핵심사업으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 부문은 올 2분기에 30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

화학계열사의 성장세는 더 두드러졌다. LG화학이 2분기에 올린 영업이익은 162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 늘었고, LG석유화학은 90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지난해 동기 대비 708% 상승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LG석유화학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매분기 800억원 이상 흑자를 내며 향후 합병될 LG화학의 실적 호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LG전자 CFO 출신인 권영수 사장은 적자에 빠졌던 LPL 을 흑자로 돌려놨다.

여기에 LG텔레콤과 LG데이콤도 2분기에 각각 842억원과 602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등 통신계열사들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LG생활건강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37.6% 증가한 20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LG그룹 실적 호전의 비결은 CEO 교체를 통한 경영체질 개선과 고객 가치경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구본무 회장의 노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3월 화학을 맡은 김반석 사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 전자의 남용 부회장, 그리고 올 초 권영수 LPL 사장 등 주요 계열사에 신임 CEO를 앉혀 분위기 쇄신을 시도했다. 특히 남 부회장과 권 사장은 각각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LG전자와 LPL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적자폭이 컸던 LPL은 LG전자의 재무책임자(CFO) 출신인 권영수 사장을 기용해 낭비요소를 없애고 수익 경영에 치중했다. 여기에 지난 4월부터 LCD 패널 가격도 오름세를 탔다. LPL은 지난 2분기 패널 가격 인상으로 그동안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던 모니터와 TV용 패널이 일제히 흑자로 전환하고, 10%를 넘지 못하던 노트북용 패널은 이익률이 30%까지 올라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시장의 변화에만 편승해 이번 실적이 달성된 것은 아니다. 가격인상의 호기를 놓치지 않은 생산량 확대 전략도 조기 턴어라운드를 앞당겼다는 평가다. LPL 관계자는 “7세대의 경우 지난 1분기 월 8만5000여 장의 기판유리를 투입했으나 2분기에는 특별한 시설 투자 없이 생산량 극대화 활동을 통해 월 평균 9만9000여 장의 기판을 투입하는 등 생산량이 15%가량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는 권영수 사장이 취임 후 직접 진두지휘한 ‘맥스 캐파(Max Capa)’ 조직과 직결된다. 권 사장은 지난 4월 생산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맥스 캐파 담당(상무)’을 신설해 기존 공장 설비를 최대한 활용, 생산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제도를 적극 운용하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남용 부회장이 영어로 발표를 하고 있다. LG전자 글로벌화의 한 단면이 아닐까.

‘맥스 캐파’는 제품 한 개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택트 타임(Tact Time)’을 최대로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파주공장 7세대 라인에서 작업순서 변경과 로봇의 작업속도를 높여 기존 1분 이상 소요되던 작업시간을 50초로 줄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새로운 투자 못지않게 기존의 시설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을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한 셈이다.

수익성 극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트북용 패널의 백라이트 부품을 줄여 제조원가를 낮추고 모니터용 패널의 도광판 두께를 20% 줄이는 등 재료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올해 2분기에 ㎡당 매출원가(달러 기준)를 전분기 대비 12% 절감했다. 또 부품구매단가 인하 등과 같은 단기 처방식 생산원가 절감이 아닌 부품과 패널, 완제품을 단일 건물 안에서 협력사와 합작 생산하는 수직통합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또 다른 실적 개선의 주역은 남용 부회장. 그가 이끄는 LG전자의 휴대전화 부문은 전 세계에서 1200만 대가량 팔린 ‘초콜릿폰’과 그 뒤를 이은 ‘샤인폰’ ‘프라다폰’ 등 차별화된 디자인과 기능을 담은 프리미엄 제품들을 계속 쏟아내며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LG전자는 그 결과 올해 2분기에만 총 191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해 분기당 판매량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장점유율도 올해 1분기 6.4%에서 2분기 7.4%로 증가했다. 대당 평균 판매가격이 약 160달러로 노키아 약 123달러, 모토롤라 약 120달러 등 글로벌 경쟁사보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구매가 늘어난 것이다.

LG전자는 7월 유럽에 출시한 ‘티타늄 블랙 샤인폰’ 등 지속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올해 7800만 대의 휴대전화 판매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해외마케팅 강화를 주문하는 등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 역시 석유화학 제품 가격 상승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전 부서가 고객기업에 밀착되어 ‘솔루션 파트너’ 활동을 하면서 단순한 제품이 아닌, 지식·기술·서비스를 결합해 고객을 지원하는 등 혁신을 하고 있다는 걸 눈여겨봐야 한다.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생산 및 기술서비스 담당도 고객사를 방문해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는 체험근무를 실시하는 식이다. 고객사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고객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사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원료 구매를 효율화하고, 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등 수익 위주의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LG그룹 계열사들의 성과 호전에는 고객 중심의 제품력 확보와 낭비요소를 제거하고 수익성을 중시하는 수익 위주의 경영이 한결같이 관통하고 있다. 이는 구본무 그룹 회장이 지난해부터 주요 계열사들의 CEO를 교체하면서 회사 분위기가 일신됐고, 이에 맞춰 CEO들이 수익과 고객 중심 경영을 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LG전자의 한 중간간부는 “더 이상 인화(人和)의 LG라는 분위기는 없다. 정말 치열하다”고 분위기를 말했다. 바뀐 LG그룹의 치열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구 회장이 수년 전부터 강조해 온 ‘1등 LG’와 ‘고객가치 경영’도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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