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과거 진사”/김 대통령/잊지도 말고 집착도 말고 새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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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합니다”/새 협력기구·직통전화 설치 합의/한일 정상 경주회담
【경주=이석구·김현일·박의준기자】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총리가 6일 경주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과 잇따른 만찬사에서 과거사와 관련해 거듭 「반성」과 「진사」를 표시함으로써 과거사 문제는 양국간 외교현안에서 일단락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관계기사 2,3면>
호소카와 총리는 이날 오후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시절에 한반도 여러분들이 예를들어 모국어교육의 기회를 뺏기거나,타국의 언어를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는가하면 종군위안부와 노동자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다』며 『한국민들이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린다』고 「반성」과 「진사」라는 표현을 사용해 공식 사죄했다.
김 대통령은 『호소카와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말씀은 한일 양국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함에 있어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총리 말씀대로 과거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이에 집착해서도 안될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으로 매듭지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사과표현은 『불행한 역사를 유감으로 생각한다』(히로히토 일왕),『불행했던 시기에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아키히토 일왕),『일본의 행위로 고통과 슬픔을 체험했던 사실에 반성하고 사과한다』(미야자와 전 총리) 등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호소카와 총리의 경우는 종군위안부·창씨개명 등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 「진사」한다고 강도높게 표현했다.
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김호진교수(고려대)는 『지금까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표현은 마음이 전혀 담기지 않은 기교적인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는데 이번 경우는 진심이 담겨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높이 평가한뒤 『이웃국가로서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데 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한편 독립운동사연구가 신용하교수(서울대·사회사)는 『지금까지의 표현들보다 한층 진일보한 표현임에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전혀 반성의지가 없었던 가시적 태도를 벗어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그러나 강제로 국권을 뺏어간 침략행위부터 사과를 분명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또 양국간 현안 발생시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을 위해 청와대와 일본 총리관저간 직통전화(Hot Line)를 설치키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한일 신경제 협력기구」의 설치에 합의하고 그 구체적 방안은 실무협의에 맡기기로 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일 신경제 협력기구는 미일간에 설치된 미일교역 포괄협의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정부차원의 기구로 정부 고위실무자로 구성,경제적 장애요소를 제거하고 필요한 현안을 풀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호소카와 총리는 김 대통령이 가능한한 빠른 시기에 일본을 방문해 주도록 요청했으며 김 대통령은 『내년에 기회 있는대로 일본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호소카와 사죄 요지
우리의 식민지 지배시절 여러분들이 타국의 언어를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종군위안부·노동자 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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