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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가라앉자 “기지개”/활기 되찾는 전·노 두 전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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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예술인 접대… 주초엔 엑스포 구경/전/골프 재개… 2박3일 지리산행도/노
연희동에도 절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여름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짓누르던 장마전선이 저만치 물러가고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평화의 댐,12·12사태,F­16 등을 둘러싼 감사원과 국회의 서슬퍼런 조사가 9월 하순으로 일단락되자 한껏 움츠러있던 연희동이 기운을 되찾고 있다. 전·노씨는 다시 사람을 만나고 외출을 재개했으며 점차 외부행사 횟수가 늘고 있다.
물론 악천후가 언제 다시 닥칠지 알 수 없다. 5,6공은 미지의 부실지대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전경환씨 수십억원」이 드러났고,노소영씨 부부와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오면 불씨를 만들수 있다.
그럼에도 연희동은 일단 안정권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곳에 있는 이들의 표정이 밝다.
○…전 전 대통령은 내주초 부인 이순자여사,측근들과 함께 대전엑스포 구경에 나설 계획이다. 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은 이미 다녀왔으니 전직 국가원수로서는 막차를 타는 셈이다. 오래전부터 여러차례 초청이 왔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폐막이 가까워서야 가게 됐다.
감사태풍이 몰아칠 때 두문불출했던 전씨는 요즘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되찾았다.
지난 15일 예술인들과의 회식이 그의 원기회복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날 저녁 전씨의 연희동자택에는 시조시인 이근배,테너 임정근,무용가 김복희,창을 하는 박윤초,가수 이동원씨 등 예술인 30여명이 찾아왔다. 이들의 방문 희망을 전씨가 받아들인 것이다.
정원에서 뷔페로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지하 응접실에서 마음껏 술을 마시며 시낭송·노래·연주·춤 등을 감상했다. 이 자리에는 이들중 몇몇 인사들과 교류가 있는 전씨의 장남 재국씨 부부도 참석했다. 전 전 대통령은 시낭송을 요청받고 백담사 시절 첫 손녀의 탄생을 축하하며 지었던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날은 서해페리호 참사가 터진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전직 대통령으로서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전날인 14일에는 5공 장관 등 측근 20여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목요산행 1백회」를 기념,북한산에 올랐다. 목요산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0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그의 외출은 더욱 잦아지고 있다. 22일 저녁엔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아이다』(서울오페라단 공연)를 감상했고,26일 아침엔 고 박정희대통령 14주기를 맞아 일찍 국립묘지를 찾았다.
전씨는 『74년 육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관 등 높은 사람들이 국립묘지에 자주 들러 묘역을 꾸미던 인부들에게 술도 사주고 했는데 10·26때는 밤에 와 보니까 썰렁하더라』며 『세상 인심이란 게 그런 것』이라는 소회도 털어 놓았다고 한다.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전씨는 28일 밤 월드컵에 진출한 대표선수단에 축전을 보냈다.
전 전 대통령측은 전경환씨의 새마을신문사 소득문제에 대해 애써 무관심한 표정이다. 한 측근은 『88년 5공비리 수사때 다 처벌받은 것 아니냐』고 했다.
○…퇴임후 의식적으로 조용히 지내온 노 전 대통령은 이달들어 부쩍 운신이 활발해졌다. 바깥 나들이도 잦아졌고,퇴임후 끊었던 골프도 다시 시작했다. 노씨는 전직 장관 등과 16,23일 필드에 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27일부터 29일까지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여사,정해창 전 비서실장,이현우 전 경호실장 등 일행은 28일 천왕봉까지 16㎞를 왕복했다.
노씨는 1일엔 롯데호텔에서 전직 국가수반회의 공동의장인 후쿠다 전 일본총리와 조찬을 함께 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은 F­16 시비에서 완전히 벗어난듯 하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공군부대에서 직접 F­16을 타보면서 F­16 논쟁에 종지부를 찍자 매우 고무된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에서 소식이 끊긴 김종휘씨 문제가 여전히 찜찜한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25일 그 김씨가 모친상을 당했다. 김씨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내에 나타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6일 역시 수석비서관이었던 최병렬의원의 모친 빈소에 조문하고 곧바로 강남성모병원으로 가 김씨 상가에 문상했다. 아마도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연희동의 두 캠프는 이렇듯 각기 활력을 찾고 있다. 그러나 반목하고 있는 양인관계에는 별다른 변화 기색이 없다. 양쪽의 측근들은 이 얘기만 나오면 『특별히 신경쓸 필요가 있겠느냐』며 목소리가 건조해진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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