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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따라 추궁강도 미묘한 차/사연 많은 의원­수감기관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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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관출신들 옛 상사에 매서운 질타/사제·선후배 경우 은근하게 지원
23일 국점감사를 받은 보사부의 송정숙장관은 70년대 초반 모언론사 문화부 재직시 유명패션디자이너이자 현 보사위 소속 박주천의원(민자)의 부인인 이신우씨에 대해 매섭게 필봉을 휘두른 적이 있다.
송 장관은 당시 이씨가 태국기 무늬를 의상디자인에 원용한 아이디어를 『국가모독』이라며 지면으로 신랄히 「감사」(?)했다. 한창 상승세를 타다 일격을 당해 격분한 이씨는 지금의 박 의원인 남편과 함께 신문사를 찾아가 송 기자에게 거센 항의를 했다.
그때 송 기자는 『당신이 자질과 발전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이씨를 설득했다.
○송 보사 칼럼 인연
서먹할 수 밖에 없었던 양측의 사이는 박 의원이 14대에 등원,보사위 소속으로 송 장관을 「감사」하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면서 또 한번의 묘한 연을 맺게 됐다.
이렇듯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날카로운 추궁을 해야 할 입장의 의원들과 가시방석에 앉은 피감기관장들과의 사이에 감춰진 묘한 인연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특히 양자간에 맺어졌던 과거사의 호·불호에 따라 의원들의 발언수위가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기도 해 얽히고 설킨 구연에 따른 공사구별의 어려움과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교육위의 공격수 박석무의원(민주)은 전남대 총장을 지낸 오병문 교육부장관의 대학제자. 박 의원은 22일 교육부 감사에서 사학 민주화운동 경력·해직교사들의 복직문제 등을 짚어 나갔으나 『발톱이 빠졌다』는게 중평. 추궁성보다는 건의성 질의로 스승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오 장관도 박 의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해 제자의 체면을 세워주는 모습이었다.
외무통일위의 노재봉(민자)·조순승(민주)의원과 한승주 외무장관은 정반대의 사례다. 노 의원은 한 장관의 서울대 문리대 5년 선배이자 한 장관이 수학한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오랜 교수생활을 해 학계 스승뻘이다.
조 의원 또한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서울대에서 「미국정책론」을 강의할 때 한 장관을 가르친 일이 있이 있다. 한 장관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뒤엔 그의 논문 출판심사위원을 맡는 등 인연을 갖고 있다.
노·조 양 의원은 이 때문인듯 사석에서 『솔직히 북 핵문제 등 외교정책을 따질게 많지만 한 장관의 곤란한 입장도 고려하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장관쪽 입장고려
상·하관계에 있던 입장이 역전 또는 대등한 관계로 바뀐 경우도 있다.
국회 문공위의 박종웅의원(민자)은 오인환 공보처 장관이 대선 당시 김영삼후보의 정치특보를 맡았을 때 그 휘하에서 지역유세 연설문안 작성 등을 맡는 비서로 활약했다. 이원종차관과는 상도동 가신그룹 직계 후배. 이번 국감에서 오 장관과 이 차관을 감사하는 입장에 서게 된 박 의원은 두사람이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적극적 질의로 의정활약을 보였으나 오 장관이 코너로 몰릴 때는 은근히 「지원성 질의」를 던져 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탤런트 이덕화씨가 대선 당시 DJ 걸음걸이를 흉내를 냈다』며 오 장관에게 그의 출연 정지를 요구했다. 이에 박 의원은 『이씨 자신의 얘기로는 그런 일이 없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유도성 질의로 오 장관을 엄호하는가 하면 언론모니터실의 「언론노조분석」 추궁에 오 장관이 곤욕을 치르자 『공보처가 잘한 것』이라며 방어막을 형성해주기도 했다.
국방위의 강창성의원(민주)은 자신이 윤필용 사건으로 찬밥신세가 됐던 3관구 사령관시절 현 도일규 수방사령관을 비서실장으로 데리고 있었다. 반하나회 입장이었던 강 의원이 결국 예편하게 되자 함께 인사에서 계속 물을 먹기도 했던 도 사령관의 수방사에 대한 감사(6일)에서 강 의원은 질타보다 개혁노력에 대한 격려에 비중을 두어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보안사령관 출신인 강 의원은 같은 날 기무사에 대한 감사에서도 기무사의 인원축소 등을 개혁노력으로 평가하며 옛 직장에 대한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도윤 기무사령관의 전격사임에 대해 「개혁성과 미진」이라는 눈총을 받아오던중 이날 강 의원 등 군선배 야당 의원들을 극진히 예우한게 상부의 진노를 불렀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국방위 임복진의원(민주)은 김동진 육참 총장·김광석 병무청장 등 2명과 육사 17기 동창생인데다 생도 4년동안 같은 7중대에서 줄곧 생활을 함께한 사이라 『아무래도 신경을 여러모로 더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정치권이나 군출신들간의 이같은 끈끈한 의리와 달리 관출신 인연의 「배려」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법사위의 강수림의원(민주)은 김두희 법무장관의 검찰 16년 후배이지만 매서운 추궁을 그치지 않아 『선배한테 너무한다』는 친정의 푸념을 듣고 있다.
○끈끈한 야당동지
재무부 세제과장·국세청 차장출신의 장재식의원(민주)과 재무부 차관보·서울국세청장 출신의 나오연의원(민자)은 장관이하 후배들이 포진하고 있는 재무부 감사에서 『실명제 정착을 너무 낙관하고 있다』고 질타하는가 하면 국세청 감사에서는 『세수차질을 우려해 세무조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추궁의 선두에 나섰다.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의 정영훈의원(민자)은 후배인 차관 등이 출석한 해운항만청장 감사에서 『여객선 사고는 감사고 뭐고 할 것도 없이 행정기관이 잘못한 인재』라며 타의원보다 성토의 톤을 한껏 높였다.
3당 합당이전 함께 야당을 했던 인연으로 피감단체장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감사분위기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구 통일민주당 출신의 조홍래 농어촌진흥공사 사장은 현 민주당 의원들과 휴식시간에 만나 『어떻게 지냈느냐』는 인사말을 스스럼없이 던지는가 하면 『대단히 옳은 말씀』이라고 이들의 우호에 화답하는 등 화기가 넘쳤다.
YS 비서실장 출신의 김우석 토개공 사장에 대한 감사에서도 『수고가 많다』는 야당 의원들의 격려가 나오는 등 과거 한솥밥 의리가 나타났다.
반면 장석화 노동위원장(민주)과 이인제 노동부장관(민자)은 같은 통일민주당 경력에다 장 위원장이 서울대 법대 4년 선배,같은 판사출신인 연에도 불구하고 서로 노동관계법전을 펼쳐가며 한치도 지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 『연분을 고려하기에는 엘리트 의식들이 너무 강하다』는 구설수에 올랐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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