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재산실사/「007작전」 방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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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의원 부동산/수차례 신분확인후 해명자료 배포/금융자산/140명 대상 올라 내달말 가야 “윤곽”
페리호 침몰사고·러시아 핵쓰레기 동해 투기 등 굵직한 현안과 국정감사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각 부처와 국회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해당 기관별 공직자윤리위가 공직자의 등록재산에 대한 실사를 본격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8층에서 국회 공직자윤리위는 극비리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첩보작전처럼 조심스럽게 이뤄진 임무는 다름아닌 부동산 실사결과 문제가 드러난 의원에 대한 해명요청 자료 배포였다.
윤리위 직원들은 의원들이 입주하지 않아 평소 아무도 쓰지 않는 8층의 빈방 하나를 차지한뒤 해당 의원들의 방에 전화해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고 『8층으로 서류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보좌관·비서관들은 윤리위의 밀실 앞에서 조금 연 문틈으로 다시 한번 신분을 확인받는다. 어렵게 사무실로 들어선뒤에도 밀봉된 서류를 받으면서 다른 해당 의원들의 이름이 보일까봐 윤리위 직원들이 손으로 가린채 서류를 고르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했다.
지난 한달간 부동산에 대한 윤리위의 실사결과 신고내용이 정부측 자료와 차이가 난 의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서류를 받으러갔던 사람들이 평소 인적이 없는 8층 복도에서 서로 계면쩍어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눈어림짐작으로 적어도 40명선에 이를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는 박헌기 윤리위 부위원장이 『10여명에 불과하다』고 밝힌 숫자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당사자들의 대부분이 정치생명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입을 열지 않으며,윤리위 관계자들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정확한 진상은 알기 힘들다.
그러나 극비리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부에서는 민자당의 K·C모,민주당의 S·L모,기타 무소속의 K,L모 의원 등이 소명을 요청받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들중 상당수는 정부측의 자료작성시기와 재산등록 시점이 많지 않는데서 오는 단순오차나,자신도 모르게 부동산 소유자로 이름이 올라간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1일부터 윤리위는 부동산에 이어 금융자산 실사를 위한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예금이 없으면서도 재산이 10억원을 넘거나 상가·오피스텔 등 근린생활시설을 가지고 있거나,예금이 있더라나 재산이 30억원 이상이거나 임대소득·채권이 많거나 존비속의 재산이 많은 경우 등을 추려 약 1백50명선으로 조사대상을 고르고 있다.
재산등록이 금융실명제 이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융자산에 대한 실사로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 실사의 진행과 더불어 정치권의 긴장감은 높아만 가고 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이영덕)는 정부사정과는 별도로 7백10명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중 금융자산 심사가 필요한 1백35∼1백40명의 명단을 작성해 20,21일 이틀에 걸쳐 해당 금융기관의 점포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주도록 요청했다.
윤리위는 ▲등록재산 총액이 10억원 이상이면서도 예금이 전혀 없거나 ▲전체 재산에서 예금비율이 3% 미만인 공직자에 대해 금융조사에 들어갔는데 일부 장·차관도 자료요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위가 자료요청을 한 점포는 대상인사의 거주지나 근무지 주변의 임의로 선정한 5∼10개의 금융기관 지점. 따라서 주소지와 근무지가 중복되는 경우를 감안할 때 5백여 점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늦어도 오는 11월10일께면 조사자료가 도착된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따라서 『자료가 도착하면 예·적금 등 금융자산의 허위신고 여부가 곧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조사기한인 12월7일보다 이른 11월말까지는 금융실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리위는 선별심사를 하고 있는 금융자산 실사와는 달리 부동산 신고에 대해서는 공개대상자 전원에 대해 면밀한 실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오병상·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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