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문인 조병화.구상.김춘수 작품활동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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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 가을들어 원로문인들의 작품활동이 활발하다.
趙炳華.具常.金春洙씨등 원로시인들이 작품발표와 함께 특히 불편했던 지난 시대를 돌아보며 순수문학론을 다시 펴고있어 주목된다. 趙炳華씨(72)는 신작시 60편을 모아 시집『잠 잃은 밤에』를 펴냈다.49년 처녀시집『버리고 싶은 遺産』이후 39권째신작 시집이니 趙씨는 한국 最多産시인으로서의 기록을 古稀가 지났음에도 계속 깨뜨리고 있는 셈이다.
『아,이 純粹/나는 그걸 살아왔건만/이렇게도 외롭구나/실로 아름다운 것은 슬픈 거/사라져 가며 사라져들 가며/나는 늙는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기대 꿈으로서 순수에 다가갔던 趙씨는 이제 이 작품「木蓮花」일부에서 보이듯 사라져 가는 것들을 노래하고 있다.그리고 시에서마저 순수로서 살기가 외로웠음을 실토하고 있다.
趙씨는 이 시집 머리말에서『나는 변하는 역사의 현장을 초월한인간존재의 보편성으로 살려고 애썼을 뿐이다.그런데 그것이 이 땅에서 왜,그렇게 어려웠는지』라고 반문하며『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이 나라 시인이기에 그런 의식이 없는 옹색 한 피해의식에내 시는 사로잡혀 있다』고 밝히고있다.
具常씨(74)는 희곡「땅밑을 흐르는 강」을『文學思想』10월호에 발표했다.
46년 元山에서 동인지『응향』을 통해 시를 발표하다 월남해 10여권의 시집을 낸 具씨는「수치」「황진이」등의 희곡도 썼다.
건강이 좋지않아 지난여름 20여일간 일본 동경의 한병원에서 요양하며 구상했다는 1백60장분량의 이 작품은 91년 서울을 무대로 급진과 보수 사이에서 진리나 휴머니즘을 지키기위해 고민하는 교수.시인.종교계인사등을 다룬 일종의 사상극 .
참된 지식인의 모형을 새기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는 具씨는 작품을 통해 좌우가 시대를 어지럽히고 행동의 폭을 좁히더라도 지식인들은 인류공통이상으로서의 맑은 샘물을 파 사회에 흘려보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시의 가장 순수한 상태인 무의미시까지 실험,한국 현대실험시내지 전위시의 기수라 할수 있는 金春洙씨(71)도 시 3편을『現代詩學』10월호에 발표했다.
『나는 시인이다.남의 시는 차마 훔치지 못하고 엊그제 쓴 내시의,그것도 제목만 겨우 따와서 조심 조심 머리에 다시 씌워본다.역시 그늘이 없다.』「베레帽」일부에서도 드러나듯 金씨는 사회성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언어에서 의미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시를 사회나 삶으로부터 따로 떼어놓는다.시 자체로 홀로 서는 시의 순수예술성을 지키기위한 것이다.
金씨는『文學思想』10월호 권두칼럼 「니힐의 위상」에서『문학은부르좌의 기만적 가치관에 대한 반대로서 니힐리즘,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한 반대로서 아나키즘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시대,잘못된 시대에 대처하던 젊은 참여문학에 철저하게 위축됐던 원로문인들의 창작품과 범순수문학 옹호론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는 것이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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