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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개혁을 추진하는 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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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을 정치권력이라 한다.정치권력은곧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를 따르게 하는 힘인데 세가지 종류로 나뉜다.첫째가 강제력적 힘이고 둘째가 교환적 힘,그리고 셋째가권위다. 따르지 않으면 벌을 주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이 강제력으로,따르는 사람은 무서워서 질서에 승복한다.명령에 따르면 보상을 줄 수 있는 힘이 교환적 힘이다.명령하는 자가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많을 때는 아주 유효한 힘이 된 다.
따르는 자가 시키는 자의 도덕성.지식.판단력.결단력등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자인하고,그 명령이 옳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따를때 우리는 그 힘을 권위라고 부른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다.권위주의란 없는권위를 있는 것처럼 억지쓰는 것을 말한다.민주주의 질서는 권위로 유지되는 질서이나 다스리는 자가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권위를 힘으로 내세우는 권위주의로 흐르면 민주질서 자체가 깨진다.
정치체제는 정치 지도자가 이러한 세가지 힘을 적절히 섞어 써가면서 운영되는데 강제력에 주로 의존할 때 專制主義 정치체제로발전하며 神의 권위를 앞세우는 통치가 되면 神政體制,지배자의 혈통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를 앞세우면 王政體制 또는 귀족정치가되고 사회 구성원의 지지로 이루어지는 권위로 다스리게 되면 민주주의 정치가 된다.
통치권의 원천이 사회 구성원에게 있다는 主權在民의 원칙을 존중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정치다.그러나 국민은 그 사회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기 위치에 따라 현존질서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므로 한가지의 「국민지지」라는 목 소리를 얻어내기는 어렵다.그래서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가면서도 정치지도자는어떤 계층 사람들의 지지를 염두에 두고 國政을 운영해나갈지 결정해야 한다.이것은 國政方向을 좌우하는 중대한 決斷이 된다.
현존질서가 자기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착취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구성원들은 체제의 혁명적 개혁을 원하게 마련인데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들의 지지를 얻어 나랏일을이끌어가게 되면 민중민주주의,또는「페로니즘」이라 불리는 정치로된다.이때 여기에 교조적인 절대주의 가치관이 첨가되면 프롤레타리아 전제정치로 발전하게 된다.
현존체제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현체제의 주인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민계층이다.대체로 현존체제의 질서속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만한 재산과 직장을 보장받고있는 사람,그리고 이 질서속에서 자기의 삶이 나 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이들은 나라의 정책이 자기 판단에 의해 옳다고 믿을 때 지지하나 강압에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의 理性的 판단을 기초로 정책을 판단하는 특색을 갖는다.그리고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려나갈 때 보통 시민민주주의라고 부른다.시민민주주의는 체제수호가 자기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정치로 정착되면 시민의 자 율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이루게 된다.
우리 사회는 해방후 半세기동안 숱한 변혁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정치체제도 그때 그때의 여건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을 가졌었다.한국민들은 自由黨 말기의 권위주의정치,군사정부 아래서의 전체정치도 겪어보았고 계층간의 첨예한 정치대결도 겪 어보았다.또한 정치제도와 정치의식이 따로 노는 혼돈과 국가 지도이념의 혼란도 겪어보았다.민주화투쟁도 수없이 벌여왔었다.
우리는 1992년의 선거를 통해비로소 主權在民의 원칙이 제대로 반영된,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부를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1993년을 한국민주주의의 元年으로 보고 있다.
국민 다수의 지지라는 흠없는 민주주의 권위를 업고 새 정부는출범부터 과감한 개혁정치를 펴나가고 있다.부정부패 척결,불합리한 제도 개선등 짧은 기간에 많은 개혁을 단행했다.새정부의 흠없는 권위에 승복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 개혁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았다.
이제 과거청산은 대체로 끝나가는 것 같다.그러나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헌 집을 헐어낸 터에 새 집을 짓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이제부터 추진해야 할 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을 추진하는 힘의 마련이다.개혁은 한사람의 뜻으로 시작될 수는 있어도 한사람의 힘만으로 이룰 수는 없다.改革은 중심적인 추진세력이 조직적으로 이끌어갈 때만 성공할 수 있다.
***市民계층이 주도세력 개혁 주도는 1차적으로는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구체화하고 정책화해서 제시할 집권정당이 담당해야 한다.민주정치는 곧 정당정치이므로 정당이 주도하지 않고서는 어떤개혁도 체계화될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계층을 개혁의 중심세력으로 앞세우느냐 하는 것이다.우리 사회구성원의 70% 이상이 스스로 시민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그리고 이들 시민계층이 주역이 되는 정치가 대한민국의 國是인 自由 民主主義체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누구를 개혁중심세력으로 삼아야 할지 자명해진다. 개혁 주도세력으로서의 여당의 위상 정립과 추진 중심세력으로서의 시민계층의 개혁참여 유도,이 두가지가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개혁의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西江大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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