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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판사 번역출판 툭하면 위약 국제망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외국과의 번역출판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체결하지만 실제로 책을 출판하지는 않는다』『초판 찍을 때는 로열티를 내지만 재판부터는 입을 씻는다』는 인식이 외국의 큰 출판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가고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망신사례로 꼽히는 것은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사인 갈리마르사가 지난해 12월「신원 에이전시」「D.R.T」「바다저작권회사」등 국내 유수한 저작권 대행회사에 보낸 공문이다.
영문으로 된 이 공문은『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지켜주는 것이 좋겠다』며 우리나라의 졸속.부도덕 번역출판 관행을 거의 직접적으로 꼬집고 있다.
갈리마르는 공문에서『우리 책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어한 출판사하고만 계약하겠다』면서『프랑스에서 문학상을 받았거나 외국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는 맹목적(BLIND)계약신청은 생산적인 것이 못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공문은 이어『예민하고 판단력이 있는 출판사 사람들만을 접촉대상으로 할 것을 분명히 해달라』면서『협상할 때 재정적 측면뿐 아니라 상대 출판사 사람의 지성이라는 측면도 똑같이 중요하게 고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또『번역책을 출간할 때는 반드시 통보하고 로열티도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하고『계약을 하고 선수금을 내고 나서는 연락이 끊어져 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꼬집었다.
갈리마르의 공문은 마지막으로『이러한 지침에 익숙지 않은 출판사들이 있겠지만 당신들 대행회사에서 견해차이를 좁히는 외교사절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이같은 내용에 대해 우리 업계에서는「자업자득」이라며 출판사들의 인식부족을 자조적으로 인정하고있다. 특히 요즘들어 큰 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우리 출판사의 일방적인 계약파기 사례다.
외국에서 새 책이 나왔다 하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우리가하겠다』고 나서서 일단 계약부터 체결해 번역출판권을 확보해놓은다음에 책을 검토해보고『자세히 보니 한국실정에 맞지 않는 책』이라며 물러앉아버리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저작권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우리 회사의 경우 금년 상반기 중에만 11건의 계약이 이런 식으로 취소됐다』고 밝히고『계약금액수가 크지 않아 상대측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뿐이지 좋지않은 평판이 국제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고 우 려했다.
이같은「계약체결후의 함흥차사」사례는 해마다 늘어 올해에는 업계 전체로 볼 경우 번역권 계약건수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다른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외국에서 좀 팔리는 책이라면 남보다 먼저 맡아놓고 보자는게 요즘 출판사들의 인식』이라며『출판사로서는 대행사에 못하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해당 외국 출판사에 대한 엄청난 신용 실추 행위』라고 지적했다.
〈趙顯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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