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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한국인 강제징용 소재 日전통극 能 무대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달 27일 東京 국립 노가쿠도(能樂堂)에서 상연된『望恨歌』란 제목의 일본 전통가면악극 노(能)가 일본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소승은 규슈(九州)야와타(八幡)에서 온 몸이오.지난 세상 전쟁때는 朝鮮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지쿠호(筑豊)의 탄광으로 끌려와 일을 하다 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어갔지요….』 이러한 대사로 시작되는 望恨歌가 일본에서 관심을 끈 것은 특이하게도 최근 韓日 양국간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제2차대전 당시 한국인강제연행을 전통극 能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望恨歌는 50년전 한국의 한 젊은이가 신혼 1년이 채 못돼 일본으로 강제 징용당한후 고향에 부인을 남겨두고 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후 한 일본인 승려가 우연히 이 젊은이의 유품 가운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한국으로 건너가 산골 마을에 혼자 살고있는 젊은이의 아내에게 편지를 전한다.편지가 전해진 것은 젊은이의 아내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고난 후다 .
할머니는 이 편지를 읽고 한국어로『아,이제야 만났네』라며 소리친다. 그리고는 깊은 恨을 가슴에 품고 격렬한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무대에서 사라진다.
일본인들은「한국인 강제연행」이란 소재가 전통가면악극인 能에서다뤄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강제연행이라면 일본 역사속에서도 되도록이면 들춰내고 싶지 않은 恥部에 속하는데다 能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소재만을 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能의 대본은 대부분 약 6백년전 무로마치(室町)시대때부터 내려온 것으로 당시 쓰인 2천곡 가운데 약 2백40곡이 주로 다뤄진다.
望恨歌처럼「강제연행」같은 소재나 대사속에 한국어가 나오는 부분등은 前代未聞이다.
望恨歌의 대본을 쓴 사람은 북과 能에 조예가 깊은 東京大 의학부의 다다 도미오(多田富雄)교수(59).
그리고 가락과 춤은 能樂 5대 유파의 하나인 간제류(觀世流)의 명인 하시오카 류마(橋岡久馬)가 맡았다.
다다교수와 하시오카 명인의 만남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다교수는 젊은 시절 하시오카 명인의 能樂무대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그의 집으로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보인 끝에 「프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지에까지 올랐다.
이번에 다다교수와 하시오카 명인이 만든 望恨歌는 전통적인 能의 개념으로 볼 때 지극히 파격적인 것이긴 하나 유랑하는 승려가 생전에 일어난 일을 읊조리는 전형적인 能의 형태나 가락.춤.의상등이 전통의 틀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않아 단 순한 실험극이상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래 하시오카 명인은 望恨歌와 같은 실험적인 能樂,즉 新作能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었으나 폭넓은 能樂 보급을 위해 전통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다다교수의 생각에 차츰 동조하게 돼 2년전부터 新作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다교수는 의학부 교수답게 지난 91년 2월에도「심장이식」을소재로 한 新作能『無明의 우물』을 발표,호평받은 바 있다.
〈金國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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