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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천절을 앞두고 평양방송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평양시내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과 유물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이 충격적 보도를 들으면서 우선 두세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과연 단군은 신화적 인물인가,아니면 역사적 인물인가. 또 고조선의 국가 기원은 언제이고 중심권은 요동인가,아니면 평양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통 역사연구가들에 따르면 단군이란 신화적 존재였다. 일부 학자들의 치밀한 반론이 제기된바 있지만 단국의 역사적 존재란 아직까지만 해도 북한 역사학계에서도 비슷한 경향이었다. 특히 고조선 연구의 대가로 꼽혔던 이지린에 따르면 단군은 신화적 인물일뿐이고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동반도의 영구 개평이었다는게 통설이었다.
최근에 발표된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강인숙 논문도 건국기원은 길게 잡고 있지만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령 요동으로 보고있는데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평양의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었다는 보도가 나올 수 있는가.
적어도 이 보도가 학문적 정확성을 기하자면 우선 평양의 단군릉이라는게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최근까지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동반도 쪽으로 보았던 북한 학계가 어째서 평양에서 단군릉을 발견하게 되었는지,자세한 발굴자료가 공개돼야 확인될 일이지만 상식적인 판단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단군의 역사적 실재나 고조선의 기원과 중심 등에 관한 연구와는 상관없이 느닷없는 평양의 단군릉 발표야말로 자칫하면 역사의 신비주의를 부르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조선을 미화하고 그 중심지를 평양과 북한에 둠으로써 고조선의 역사를 북한의 역사로 환치하려는 역사적 환각주의가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역사와 신화란 종이 한장 차이다. 역사의 효용과 남용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역사의 남용이 곧 신화가 되는 것이다.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을 쬐면 역사가 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지나치게 민족감정을 앞세우고 평양의 정통성과 북한의 위상을 내세우기 위한 역사적 남용으로 단군신화가 오용·악용되는 일이 없는지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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