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통체증 해소 지혜:하(선진국 무엇이 다른가: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컴퓨터로 신호주기 조절/로터리식 교차로… 병목늘어
런던의 유흥가이자 최고 중심지 파카딜리 광장.
괴상한 머리 모양의 펑크족과 술취한 젊은이,관광객들로 주말이면 발디딜틈 없이 붐빈다,
영국 특유의 비좁은 편도 2차선 도로로 밀려드는 차들로 가득 차 서울의 출퇴근길을 무색케 한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1분 가다 10분씩 마냥 서있는 짜증스런 서울 거리와는 사뭇 다르다.
완만한 속도나마 차량의 물결이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도로율 23%에 차량대수가 2백75만대인 런던이 도로율 18.5%에 1백58만대의 차가 다니는 서울에 비해 교통 여건이 훨씬 낫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몇시간이고 옴쭉달싹 못하는 서울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이 런던에선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결은 교통을 철저히 「흐름」으로 파악,이 흐름을 시전체적으로 잘 순환토록 조절하는 런던의 「스쿠트 시스팀」(Scoot System)에 있다.
혈전(핏덩이)이 하나의 혈관을 막는 즉시 온몸의 혈액순환이 마비되는 것처럼 실핏줄 같은 대도시 교통망도 중심부에 병목현상이 일어날 경우 주변도로에 연쇄적인 정체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같은 교통체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시내 모든 교차로에서의 교통량을 시시각각 적절히 조절하자는 것이 스쿠트의 핵심개념이다.
스쿠트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붐비는 모든 교차로의 도로밑에 감지기를 묻고 이 위를 통과하는 차량대수를 파악한뒤 데이타를 중앙통제실로 전송한다.
중앙통제실에 설치된 8대의 대형 컴퓨터는 이 자료를 근거로 런던 전체 차원에서 모든 신호등의 가장 이상적인 점멸시간을 순간적으로 계산,컴퓨터와 연결된 신호등들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때 걸리는 시간은 7∼8초.
차들이 한 교차로에서 다음 교차로로 달려가는 동안 이미 신호등의 점멸시간은 런던에서 가장 합리적인 상황으로 바뀌게된다.
현재 런던의 3천2백여개 신호등중 절반인 1천6백여개가 컴퓨터에 의해 조작되고 있으며 93∼94년 동안 6백50개가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이 시스팀을 운영하는 런던 「교통시스팀 운영단」(TCSU)에 따르면 스쿠트 시스팀 덕분에 러시아워때 소요시간이 28% 줄었으며 교통 체증에 의한 손실도 연간 1억3천만 파운드(1천6백여억원)나 절약된 것으로 분석됐다. 40분 걸리던 출근시간이 30분 미만으로 준셈이다.
시스팀 운영 책임자 투미씨는 『경찰은 교통사고같은 상황만을 모니터를 통해 체크하고 나머지 모든 교통량 통제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조작한다』고 설명했다.
버스 전용차선에 감지기를 설치,버스가 지날 경우 우선적으로 파란신호를 줘 승용차보다 버스가 빠르게 하는 「버스 우선 시스팀」(Bus Priority System)도 대중교통수단 이용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런던의 교통난을 푸는데 한몫한다.
◎교통통제보다 소통 우선/차 천천히 가도 서있진 않도록/영·불·독
이밖에 런던의 순조로운 교통 흐름을 받치는 것이 교차로에서 로터리를 이용한 순환개념이다.
런던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거의 대부분 교차로가 신호등 없는 로터리식으로 차들이 로터리를 돌아 원하는 방향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호등에 걸려 교통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게한 영국 특유의 시스팀이다.
영국의 양심적으로 개발중인 런던 동쪽 신시가지 도크 랜드를 가봐도 쭉쭉 뻗은 신작로 대신 좁은 편도 1차선 도로에 신호등없는 로터리식 교차로들이다.
이같은 개념은 바다 건너 파리의 도로망에서도 뚜렷히 나타난다.
나폴레옹의 전승기념물이자 파리 도로교통의 축인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간선도로가 방사선형으로 뻗어 있으며 이곳으로 모인 차들이 개선문 주위를 돌아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도록 돼있다.
물론 신호등이 없어 교통의 흐름이 막히지 않는다.
기술선진국 독일도 교통의 흐름을 중시하면서도 스쿠트보다 개념적으로 한걸음 앞선 최신 시스팀을 개발중이다.
지멘스사의 뮌헨연구단지에서 개발,현재 베를린에서 시험중인 「유로 스카우트」(EURO Scout) 시스팀이 그것으로 신호등을 중앙컴퓨터가 조정한다는 것은 스쿠트와 같다.
그러나 컴퓨터가 신호등만을 조작토록한 스쿠트와는 달리 차량안에 소형 운행장치를 달고 신호등 옆에 설치된 센서와 적외선으로 상호 교신토록 해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교통량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중앙컴퓨터와 연결된 운행장치가 운전방향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이 시스팀의 특징은 교통체증이 발생할 경우 컴퓨터가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우회도로를 안내한다.
체증지역에 차들이 몰리지 않게 함으로써 병목현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예방한다는 것이다.
유로 스타우트를 개발한 폰 톰케비쉬씨는 『그간 정부로부터 한푼의 지원금도 못받았으나 대도시 교통문제가 날로 악화돼 언젠가는 이러한 형태의 교통통제 시스팀이 채택될 수 밖에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가면 교차로마다 설치된 지하차도를 볼 수 있다.
이 역시 교차로에서 교통의 흐름을 막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도로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려는 벨기에식 접근방법이다.
서울시는 지난 20일 길을 더 닦아 선진국 수준인 25%까지 도로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2000년대 교통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어느 구석에도 서구 선진국에서 볼 수 있듯 교통을 흐름으로 보고 주어진 도로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방안은 찾기 어렵다.
「차가 막히니 길을 뚫자」는 단순사고에서 벗어나 교통문제에 대해 「운영의 묘」를 살리는 다각도의 접근이 절실한 때다.
◎우리의 현실/흐름 파악않고 “넓히고 보자” 졸속행정/점멸시간 고정… 신호체계도 주먹구구
우리나라에서 교통을 「흐름」으로 보지않고 도로정책을 펴 자원과 예산을 엄청나게 낭비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의 동서간 교통량을 흡수키 위해 86년 건설된 서울 올림픽대로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개통당시 시외곽 구간은 왕복 10차선으로 건설하고도 교통량이 집중되는 도시중심부는 4∼8차선으로 만들어 러시아워는 물론 평소에도 병목현상으로 도시고속도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었다.
평균 60∼80㎞로 달리던 차량들이 노량대교 부근을 지날때면 20㎞이하의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했었다.
결국 88년말부터 총공사비 9백93억여원을 들여 확장공사에 착수,4년6개월만인 지난 6월 병목현상을 빚었던 화곡동∼반포대교,암사동∼하일동구간 등 모두 19.2㎞를 왕복 8∼10차선으로 늘렸다.
그러나 그동안 좁은 차선에도 공사에 따른 혼잡으로 시민들이 겪어야했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모두 교통을 흐름으로 파악하지 않고 「길부터 넓히고 보자」는 식의 졸속 교통행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또 현재 우리나라의 신호체계 역시 선진국에 비하면 주먹구구 수준으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현재 서울경찰청에서는 하루를 아침·저녁 러시아워와 주간 및 야간 4∼5개 시간대로 나눠 시내의 모든 신호등 점멸시간을 주기에 따라 일괄적으로 고정시켰다.
교통량을 1년에 두차례씩 조사,계절에 따라 점멸시간을 조정하고 있으나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교통량의 흐름을 신호체계에 반영하는 시스팀은 전무한 형편이다.<남정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