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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재정구조 “손질”/정부확정 내년예산안 특징을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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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큰틀」 정해 5년앞 내다보고 편성/실명제여파 세금 잘 걷힐지 걱정
내년도 예산안은 문민정부의 첫 작품답게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무엇보다도 뒤틀린 재정구조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스며있다.
심각한 지경에 이른 양곡관리제도를 치유하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고. 또 금융기관에 더 이상의 정책금융 부담을 떠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극심한 애로현상을 보이고 있는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기 위해 교통세란 목적세를 신설하고,경직성 경비를 줄이겠다고 나선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인건비·방위비·지방교부금 등 어쩔 여지가 없는 경직성 예산비중은 90년 66%,93년 53.8%에서 내년에는 60.4%로 낮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할 일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채라도 발행해 필요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자당과 조세연구원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예산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직성경비 절감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최소한 그때까지는 건정재정 유지가 절실하다는 판단이 벌써부터 적자재정 운운하다간 통일이후 감당하겠느냐는 이야기다.
또 지금까지는 한해단위로 예산을 짜다보니 「정책흐름」이 오락가락했는데 이번에는 중장기적 구도에서 예산편성에 접근했다.
적어도 신경제 5개년 계획기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큰 틀을 정하고,그 안에서 내년도 나라살림살이를 짰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인건비 항목을 보면 「공무원의 사기진작」이란 구호가 조금은 멋적어진다. 공무원 봉급 인상률이 6.2%에 그쳤고 전체적인 인건비 증가율도 올해의 13.4%에 비해 크게 낮은 8%에 불과하다.
개혁과 사정바람 속에서 한껏 움츠러든 공무원들의 어깨가 얼마나 펴질지 의문이다.
그러나 개선된 부분도 꽤 있다.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시간을 한달에 73시간(지금은 33시간)까지 인정함으로써 5급 사무관의 경우 한달 최대 시간외 근무수당을 올보다 26만2천원 늘어난 33만5천원까지 받을 수 있게됐다. 초·중등교원의 교직 수당도 2만원을 더해 15만원으로 올렸다.
보다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도 대폭 현실화했다. 5급이하의 관내 출장비를 하루 4천5백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으며,경찰관서 운영비도 올해 8백73억원이던 것을 1천6백76억원으로 거의 배나 늘렸다.
○수당은 현실화
방위비 증가율은 예산실 의지보다는 높은 선에서 정해졌다. 예산실무자들은 올해(9.5%) 보다 낮은 수준의 증가율을 관철시키려 했다. 지난 11일 당정협의가 끝난 뒤에도 국방부와 예산실간에 방위비 증가율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결국 휘몰아친 개혁돌풍으로 위축된 군사기 문제가 고려돼 예상을 다소 웃도는 9.6%로 확정됐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방위비는 처음으로 10조원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전체 예산증가율이 방위비 증가율을 웃돌면서 예산중 방위비 비중은 올해 25.2%에서 24.3%로 낮아졌다. 대GNP 비중도 3.73%에서 3.62%로 떨어졌다.
사업비 중에는 역시 SOC 확충과 중소기업분야를 대폭 늘린 것이 두드러진다.
이의 재원조달을 위해 휘발유와 경유에는 붙는 특별소비세를 목적세로 전환함과 동시에 세율을 대폭 높였다.
휘발유 특소세율은 1백9%에서 1백50%로,경유는 9%에서 20%로 올라간다. 목적세 신설문제는 지방교부금을 줄인다는 점에서 작년부터 내무부와 교육부의 거센 반발을 받아왔는데 결국 교부금 감소분 5천9백억원을 지방세인 담배소비세를 현재 갑당 3백60원에서 4백60원으로 올려주는 방식 등을 통해 모두 메워주기로 했다.
이번 예산편성작업에서 가장 개혁적인 부분 한곳을 꼽으라면 역시 양곡관리제도의 대수술이다. 이중곡가제를 지탱하기 위해 발행해온 양곡증권을 이젠 더 이상 새로 발행하지 않으며,이미 발행된 증권은 앞으로 정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굴리는 연금·기금의 여유자금을 정부관리하에 두도록 한 것도 획기적이다. 그런 여유자금을 재정투·융자 특별회계에 넣어지금까지 한은과 국책은행들이 주로 맡아 오던 농어촌 및 중소기업분야 정책금융을 재정이 걸머지겠다는 것이다.
○“할일은 하겠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예산안대로 과연 세금이 걷힐 것이냐는 점이다. 올해 세수부족액이 1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도 세금은 올보다 4조7천억원 더 걷을 계획이다.
실명제 실시로 세원이 얼마나 더 노출될지도 미지수고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내년 세수전망을 어둡게하고 있다. 세금을 직접 거두는 국세청과 재무부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적잖이 고민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할 일은 하겠다」는 입장을 누차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그만큼 더 거두겠다는 뜻도 된다.
또 수익자 부담원칙을 확대한다는 방침에 따라 고속도로 통행료·택시요금·공항이용료 등이 내년에 상당폭 인상될 전망이다. 물가불안과 함께 실질적인 소득감소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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