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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에서>문인.독자등 백여명참가 목포 문학.예술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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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문학연구소(소장 任軒永)는 제15차 문학기행을 18~19일 이틀간 全南木浦에서 가졌다.車凡錫.千勝世씨를 비롯한 이 고장출신 작가와 지역문인.일반독자등 1백여명의 참가자들은 「통일문학과 목포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이어 木 浦 일원에 널린 문학.예술의 산실을 둘러봤다.
木浦는 눈물의 고장이고 밀리움의 고장이다.1897년 開港이후日帝수탈용의 朝鮮 쌀.면화.소금이 모두 모여들어 한때는 「3白의 고장」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던 곳.조선 6대도시.3대항구의 하나로 제법 은성함을 자랑했던 목포는 해방후 밀 리고 밀리던 끝에 이제 항구에서 한낱 포구로 전락하고 있다.이러한 현실을 木浦시민들은 「아껴놓은 땅」이라 자조하며 태평양의 중심항으로 떠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恨을 안으로 다스리며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목포를 명실상부한 「藝鄕」으로 가꿨다.한국화의 대가 南農 許楗,서양화의 金煥基가 이고장 출신이다.문학의 경우는 더 울창해서 한국현대문학의 대모 朴花城(1904~1988)과 식민지아래서 연극운동을 펼치다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金祐鎭이 또한 이 고장 출신이다.
1925년 木浦의 방직공장 여직공을 묘사한 단편「秋夕前夜」로문단에 나와 한국현대문학의 한 장을 열고 간 朴花城이 집필하면서 지역문단도 일궜던 집은 주인은 없고 초가을 꽃들만 화단에 무성했다.오랜만에 자신의 뼈를 키운 그 집을 찾 은 아들 千勝世씨는 화단 앞에 세워진 어머니의 문학비에 再拜한 뒤 비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돌아온 탕아처럼.
어머니를 향한 千씨의 호곡은 자신의 가족사와 불우했던 유년에대한 통곡이며 木浦문학,나아가 불우했던 우리 문학과 역사에 대한 통곡이다.
千씨는 어린시절 자신을 방기했던 어머니를 부정했다.왜곡된 정치.사회에 맞서 제도권을 부정하고 재야에서 민족.민중 문학활동을 폈다.『木浦지역문학이 정권에 순치돼 순수문학 활동만을 폈다』며 木浦문단마저도 철저히 부정해 버렸다.그러한 그가 어머니 朴花城문학비를 부둥켜안고 통곡한 것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지방문학과 중앙문학의 통일의 한 상징으로 비칠수 있다.
18일 오후10시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한 車凡錫씨는 『지금까지 내가 발표한 80편 가량의 작품중마음에 드는 것은 내고향 木浦를 무대로 한 것이며 거기에 참여나 순수의 2분법은 없다』고 말했다.이어 시인 許炯萬씨는 『木浦는 신의주까지 9백39.1㎞에 이르는 국도 1호선의 시발점』이라며 『원초적 애향심과 문학정신으로 갈등을 극복,통일문학으로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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