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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위,「문제인사」처리 “고심”/“기준도 없이 알아서 하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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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권한에 한계”… 계획 못세운채 관망/정치권도 윤리위 핑계대고 눈치만
공직자 숙정바람은 재산많은 고위공직자들 뿐 아니라 사정을 담당한 실무자들도 괴롭히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는 한껏 높아 부패한 공직자가 옷을 벗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청와대에서 부는 개혁세력의 의지도 가을서릿발 같다.
그렇다고 위에서 숙정기준을 내려준다면 몰라도 알아서 하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위에서 숫자를 정해주고 무조건 자르라고 한 80년 숙정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실무자들은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무자들 부담
○…행정부의 경우 윤리법의 규정 때문에 윤리위는 아예 「과거 불문」 원칙을 선언했다. 그나마 사정기관이 떠맡기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문제는 국무총리실 제4조정관이 중심이 돼 각부처 감사관실이 자체조사토록 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감사관 회의에 참석했던 감사관들도 『정확한 기준이 뭔지 아직 모르겠다』며 갸우뚱해 한다. 숙정의 강도나 기준 어느것도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해나가며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과거 70,80년대의 투기 바람속에 살면서 땅에 투자한 것이 잘못이냐는 항변들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총리실은 과거의 거래내용까지 들추어 「투기」인지 「투자」인지를 가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감사관들은 그 기준이 얼마나 모호하냐는 것이다.
심지어 공직자윤리법 13조에는 『등록의무자는 허위등록,기타 이 법에 정한 사유외에는 등록된 사항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나 처분을 받지 아니하며 누구든지 재산등록사항을 이 법에 정한 외의 목적으로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법에 규정된 처벌은 「직무상 비밀을 이용한 재산취득」과 「허위등록」에 불과하다.
공개대상자에 대해서는 『등록서류가 아니라 관보와 신문에 공개된 것을 보고 조사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비공개대상자들에 대해서는 당초 『감사관이 「직무상 인지한 사항」을 원래의 감사업무에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던 명분이 약하게 돼 구체적인 계획도 못세우고 주춤하고 있다. 윤리위에 열람을 요청하는 것도 범죄수사 또는 비위조사나 이에 관련된 재판상 필요할 때만 가능하다.
○…재산공개 파문끝에 대법원장이 물러나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사법부는 13일 재산공개이후 첫 윤리위원회(위원장 안병수변호사)를 열고 재산 실사대상과 방법·기준 등에 관해 논의했다.
윤리위는 일단 과다재산보유자 및 재산형성과정에서 부동산투기 등의 의혹이 제기된 법관 10여명을 중점 실사키로 했다.
○자퇴유도 검토
그러나 윤리위는 관계기관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와 신고사항을 대조해 재산은폐·누락 등 불성실신고 여부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을뿐 부도덕한 재산형성 등의 문제점이 드러난 법관들에 대한 효율적 제재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 일부에서는 윤리위와는 별도로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재산실사기구를 만들어 문제법관들에 대한 자진사퇴 유도나 인사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법원행정처 수뇌부에 대한 인사가 어차피 뒤따를 수밖에 없어 문제 법관들에 대한 본격적 조치는 신임대법원장의 정식취임 이후로 미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 윤리위원회(위원장 이성열변호사)는 10일 재산공개에 따른 윤리위원회를 개최했으나 등록대상자 39명 전원에 대해 실사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뿐 구체적 실사방법과 기준 등은 정하지 못한 상태다.
○…국회윤리위는 13일 재산공개후 첫 회의를 열고 구체적 실사방법을 논의했으나 격앙된 여론의 수위때문에 고심중이다.
김덕주 대법원장 사태 등으로 분위기는 냉랭한데 반해 실제 실사가 어렵고 더딜 수밖에 없어 각 정당,특히 민자당 스스로 해결해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민자당 역시 처리강도 등을 둘러싼 내부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청와대의 최종결심만 기다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다.
민자당은 더나아가 『법적 기구인 국회윤리위에서 심사하게 되어있으니 윤리위의 심사결과를 보아가며 처리하겠다』는 공식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윤리위원들의 속을 태운다.
그러면서도 민자당측은 만약에 있을 청와대의 「능동적 처리」에 대비하기위해 당차원의 조사를 하지않을 수는 없어 일단 지난주부터 당공식기구인 기조실을 통해 물의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정리해 1차 자료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민자당의 이같은 엉거주춤한 자세는 기본적으로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이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지않고 있는 가운데 당직자들간에 총재의 심중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
○민자 “엉거주춤”
지난 9일 주례회동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온 김종필대표는 『윤리위 중심으로 처리하겠다』는 자신의 보고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후문.
당시 김 대표의 보고를 들은 김 대통령은 윤리위의 인적구성내용을 보니 문제가 많더라』고만 언급했는 것이다.
반면 지난주말 별도로 대통령을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황명수 사무총장 역시 재산공개에 따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통령의 선문답만 듣고 돌아왔는데 개인적으로 『당에서 뭔가 조치를 하지않을 수 없다』는 다소 적극적인 해석을 했다고 한다.
황 총장은 이같은 판단에서 13일 『일단 윤리위가 가동되는 것을 봐야겠다』면서도 『당에서는 당대로 1차와 2차간의 차이,2차신고중 누락 등에 대해 조사해봐야겠다,도저히 당에 머물러 있다가는 당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김진국·오병상·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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