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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매거진>신의손 일화GK 사리체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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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내 프로축구사상 처음인 62게임 무교체연속출장의 대기록을 세운 舊소련 용병출신의 일화 GK 발레리 사리체프(33)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사리체프는 92년3월28일 일화에 입단,국내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지난8일 현대와의 울산경기에 출장하기까지 단 한게임도 거르지않고 62게임에 출장함으로써「최고의 鐵脚」임을 과시한것.더욱이 그는 그동안 한국무대를 거쳐간 20여 명의 외국인 용병가운데 유독 성실한 플레이와 깨끗한 매너로 팬들의 아낌없는사랑을 받아온 터였다.
『이젠 한국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한동안 꽤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하고 있어요.아이들 역시 한국생활에 만족해하는 눈치고요.아무튼 한국은「제2고향」으로 가슴깊이 자리할 것입니다.』 아직은 서툴기만한 한국말이지만 그의 환한 얼굴에서 한국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쉽게 읽을 수 있다.
한국생활 20개월째를 맞고있는 그는「神의 손」「GK교과서」라는 닉네임과 함께 창단4년의 일화를 첫 정규리그 우승의 장미빛꿈에 젖어들게한 주역이지만 아내와 1남1녀의 자녀들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가 게임이나 훈련시간외에는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평소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면 잠자리에 드는 큰딸 올가(9)와 아들 예브게니(7)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거실에 설치한 미 니농구대에서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즐기며 쌓인 피로를 씻는다.17세때 처음만나 오랜 교제끝에 지난 85년 결혼한 아내 올가 노베르타브나(31)는 그의 정신적 지주.한번쯤은 경기장을 찾을법도 하건만단 한차례도 그런 적이 없는 아내 지만 그에겐 다시없는 인생의동반자다.비록 경기장엔 가지 않지만 평소 내성적인 남편이 행여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후덕함과 남편관련 신문기사는 빠짐없이 스크랩해두는등 자상한 아내다.사리체프는 아내와 함께 밤늦은 시 각 소파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게 빼놓을수없는 낙이다.록 뮤직을 애호하는 이 커플은 영국의 3인조밴드인제네시스그룹의 노래를 자주 듣고 최근엔『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등 국내가요도 즐겨듣곤 한다.현관 붙박이장엔 각종 카셋테이프나 CD판들이 빼곡이 차있을 정도.
『인생은 축구볼과 같아 내일을 알수 없다』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경기장 안팎에서 뿐만아니라 훈련 틈틈이 외식을 겸해 가족나들이를 하거나 한국의고적지를 찾아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주엔 대전엑스포를 다녀왔다고 자랑이다.무엇보다 한국의 맛과 멋을 좀더 피부로 느끼기 위함인데 김치나 된장찌개가 식탁의주된 메뉴가 돼버린지도 이미 오래다.
자주 어울리는 이웃이라면 팀후배인 朱龍國(23)과 소련유학생출신으로 그와 오랫동안 교분을 쌓아온 鄭炳善씨(33)정도.특히GK 후배인 朱는 친형제이상으로 잘 따라줘 고맙긴 하나 자신때문에 프로입문후에 단 한게임도 출장치 못하고 있 는게 못내 안쓰럽다고 말한다.
걱정이 있다면 자녀들의 친구문제.신용산국교 외국인특수반에 다니는 두자녀가 하루빨리 한글에 익숙해지고 문화적 이질감에서 벗어나 많은 한국친구들과 두루 어울려 지냈으면 하는게 아버지로서의 소박한 바람이다.
『선수생활의 대미를 한국에서 장식하게된게 큰 행운입니다.여건만 된다면 선수및 지도자로서 한국프로축구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최근 일화측과 재계약(계약금7만달러.연봉6만달러)에 합의,선수생활을 2년 연장한 사리체프-.그의 꿈이 성사될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같다.
〈全鍾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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