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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10년 넘어도 “평사원 신세”(여성인력 활용하자: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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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문직조차 차별받기 일쑤
모집 채용 및 배치·승진에서의 남녀차별 또한 여성인력의 활용을 가로막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91년말 현재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7.3%(통계청 통계).
그러나 취업여성의 대부분은 비서직·경리직 등 단순사무직·청소원·안내원 등 서비스직,디자이너 등 「남자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전형적 여성직종(?)에 몰려 있다. 산업발전과 함께 제조업·단순기능직 중심에서 80년대 들어 전문기능직·사무판매직 등으로 여성 고용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긴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전문기능직 기간노동자로 자리잡지 못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용되는 임기응변식 고용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남성직종」(?)에 여성이 도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다. 즉 여성에게는 한정된 직종에 대해서만 그나마 취업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88년 4월부터 근로자의 모집·채용에 있어 성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 이래 사원 모집광고에 지원자격을 남자로 제한한 신도리코·동아제약·대한 교육보험 등에 벌금이 선고되면서 표면적으로 채용에서의 성차별은 사라졌다.
그러나 직종·직무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사무직·생산직,심지어 전문직에서조차 직무 구분에 대한 남녀 차별은 시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노동조합총연맹 여성국이 91년 10∼12월 전국 1백30여 업체의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무직의 경우 학력이 같아도 하는 일의 내용이 남녀에 따라 다르다고 응답한 업체는 전체조사 대상의 무려 92.8%로 나타났다. 또 50.8%는 학력이 같아도 남녀는 직급·일의 내용이 다르다고 응답했다. 결국 학력에 상관없이 일의 배치는 성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신동아화재보험에 근무하는 김희정씨(28·노조 부위원장)는 『은행의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시행으로 오랜 관행이던 여행원제가 폐지,남녀 모두 동일한 직급으로 일할 수 있게 됐으나 보험·증권·단자 등 제2금융권에서는 아직도 여성에게 직무·직급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같이 입사한 동기생의 경우 적성과 크게 관계없이 남자는 영업·관리 등 부서에 배치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문서관리·단말기조작·복사 등 단순업무만 맡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근무연한이 높아져 급수가 올라가도 여성의 경우 좀처럼 업무내용이 바뀌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고 그는 얘기한다.
흔히 「전문직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다」로 여겨지고 있으나 일의 영역이 성에 따라 나뉘기는 전문직여성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의사의 경우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 임용과정에서 여성들은 「덜 힘들고」 「여성에 맞는」 소아과·산부인과·피부과·방사선과 등에 주로 배치되는 반면 외과·내과 등 이른바 인기과에는 남성이 우선 채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정된 직종… 급수 올라도 단순업무만 맡겨/승진시험 불공평·합격해도 발령 지연 예사
90년 15명의 외과 전공의 모집에서 응시한 33명 가운데 9등을 해 합격권안에 든 여자 인턴을 불합격시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혐의로 전주지검에 고소된 「전주 예수병원 인턴 채용 차별사건」은 여의사들에게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승진 차별은 여성노동을 저직급·저임금에 묶어놓는 굴레와도 같다. 직무·직급에서 차별된 여성은 승진에서도 누락,차별대우를 받는다.
금융권·일반기업 등 사무직 여성의 경우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남자 후배에게도 승진에서 밀려나는 예가 흔하다.
한국화약그룹의 한 계열사에 근무하는 황정옥씨(34)도 예외가 아니다.
82년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황씨는 졸업과 동시에 실험실 연구직으로 취업,1년후 사무직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사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동기생들은 말할 것 없고 황씨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들도 이미 과장으로 승진했으나 그녀만 「만년 평사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대졸 여직원을 채용하지 않아 적용할 인사규정이 없어 승진이 어렵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는 것.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친구들을 많이 보아왔다는 황씨는 몇번이나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대기업·은행·보험·증권사의 승진시험 응시 기회에서도 여성은 또다시 차별된다. 남자는 입사후 3년이 지나면 대리승진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여자는 5년이 경과해야만 승진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는 등 불합리한 규칙들이 엄존하고 있다.
승진시험에 합격해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발령을 지연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 돼버렸다.
앞서 제시한 한국노총 조사결과도 여성의 승진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입증해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6개 응답업체중 「관리직에 여성이 한명도 진출해있지 않은 업체」는 68.8%인 444개 업체에 달했다.
한국 여성민우회 정양희간사(33)는 『여성 취업의 내용이 저직급·저임금·차별 승진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여성들의 고용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여성의 극심한 직무·영역 차별화를 시정하기 위해선 단일호봉제를 운영하는 등 비합리적 인사관리 시스팀 개선을 위한 기업측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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