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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보완하라” 침묵 깬 민자/세율 추가인하 요구한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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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 못살리면 실명제도 허사”/당정회의서 정부에 강력 제동
전격적인 실명제 실시에 침묵해오던 민자당 세제개편 등 실명제 보완대책 마련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자당은 실명제 실시후 당내 경제통 8인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보완책을 논의해 왔으나 최근까지 침묵속의 물밑작업만 해왔다. 그러던 민자당이 1일 세제개편안에 대한 당정회의에서는 세율의 추가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정부안에 동의해 주지않았다. 그리고 2일 세제개혁특위를 급히 소집,당의 입장을 정리해 6일 당정회의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정부측에 세율 추가인하를 요구키로 했다.
○이견 이례적 소개
경제 당정창구인 서상목 제1조정실장은 1일 회의후 기자실에 들러 이례적으로 당정간의 이견을 소개하면서 『한번 더 당정협의를 갖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실명제 관련 당정회의 사실조차 숨겨온 모습과는 판이한 태도 변화다.
○…당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골자는 『실명제 실시로 세수가 증대하는만큼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취지에서 법인세와 소득세·상속세·증여세 등의 세율을 인하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법인세율의 경우 정부에서 2%포인트정도 낮춘 것을 두배인 4% 포인트정도로,소득세율도 평균 2∼3% 포인트로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속세·증여세의 경우도 그동안 거의 노출되지 않았던 세원이 실명제 실시로 갑자기 노출됨에 따른 충격적인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안의 5% 포인트보다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에서 기업가들의 부담을 줄이고,적정과세라는 측면에서 세부담이 대폭 늘어나는 부유층을 고려한 주장들이다. 기업의 접대비·기밀비 한도를 중소기업만 늘려줄게 아니라 대기업도 늘려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성격이다.
그밖의 주장들 역시 세율을 인하해 국민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와 대체로 맥락은 같은 하지만 수혜대상이 기업가나 부유층보다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다소 성격이 다르다. 부유층이 마시는 양주의 특소세는 낮추면서 서민들이 마시는 소주에는 교육세를 10%나 부과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않기에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설탕이나 청량음료·초컬릿 등에 특소세를 부과하는 것은 고소득층에 상대적으로 많은 세부담을 물린다는 특소세의 취지와 맞지 않으므로 면세해주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이같은 서민 위주의 대안들이다.
○…민자당이 예전 같지 않게 이같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명제 실시의 충격이 우리경제에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돼 강력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서도 수용
실명제 실시 초기 당의 목소리는 높지않았다. 세율을 빨리 인하해 실명제 실시로 늘어난 세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는 당의 주장이 정부측에 바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실명제의 엄격한 실행을 강조하는 김영삼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당의 목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측은 세수감소를 우려해 세율인하를 유보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당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1차적으로 세율인하를 주장하는 당의 안을 김 대통령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최근 민정계 중진들과의 개별접촉 등을 통해 실명제 보완대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당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지금까지 정부주도에 수동적으로 끌려온 자세에서 탈피,보다 적극적인 입장표명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김 대통령이 보완책을 수용하고 당이 목소리를 높이는 직접적인 배경은 실명제 실시로 늘어나게된 세부담에 대한 저항감이라는 점이다. 각종 이름없는 돈을 굴려온 기업들과 매출을 축소해 부가세특례대상으로 세금을 거의 내지않았던 중소업체들이 생존차원에서 각종 요로를 통해 민자당에 보완책 마련을 호소해왔다.
○심각한 조세저항
그들 대부분이 우리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들이어서 그들의 호소를 적극 반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도 작용했다.
결국 실명제가 성공하더라도 경제가 망하면 실명제실시의 기본취지도 사라진다는 위기의식이 점증함에 따라 개혁과 함께 경제회생을 주장하는 민자당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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