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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시대>한국사신론 이기백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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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李基白교수(69.한림大)의『한국사신론』은 우리 역사개설서의 고전으로까지 평가되는 역저다.
일조각에서 펴낸 이 책은 67년 초판이 나온 이래 76년 개정판,90년 신수판을 내며 3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지금도 매달 1만여부가 꾸준히 나가고 있다.
이 책은 또 미국의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영어판을 비롯,70년이래 지난 90년까지 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말레이시아어등 5개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사신론』의 특징은 일제가 남긴 응어리인 식민사관에 대한본격적인 비판,저자 나름의 독창적인 시대구분,내용이나 참고문헌에서 학계의 최신 연구성과를 꾸준히 반영한 점 등으로 요약된다. 『한국사신론』은 우선 식민사관에 대한 본격적.이론적 비판으로 명성을 높였다.
47년 출간된 李丙燾의『국사대관』이 한국전쟁 이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상황에서『한국사신론』은 『국사대관』이 넘지못한「식민성」의 벽을 허문 연구로 인정받았다.
李교수는 61년 자신이 펴낸『국사신론』서론에서 식민사관을 통렬히 비판해 주목을 받았고 이를 모태로 삼은『한국사신론』에서 이 부분을 별개의 장으로 독립시켜 본격적인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식민사관은 한국민족이 선천적,혹은 숙명적으로 당파적 민족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민족적 단결을 파괴해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민족성이 역사의 산물인 것이지 역사가 민족성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반도적 성격.사대주의.당파성.문화적 모방성.정체성 등으로 표현된 식민주의사관의 허구를 이론적으로 조목조목 논박한 이 책은 이후 국사학계에서 식민사관 비판의 붐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사신론』의 가장 큰 특징은 독창적인 시대구분이다.
한국사의 발전을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을 중심으로▲원시공동체 사회▲전제왕권의 성립▲호족의 시대▲문벌귀족의 사회▲신흥사대부의 등장▲사림세력의 등장 등 모두 16단계로 체계화하고 있는 점이그것이다.
종래의 왕조중심 역사관은 물론 역사를 고대.중세.근대로 나누는 서구식 3분법을 과감히 탈피한 것이다.
여기서의 지배세력은 일정한 시기에 정치.사회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역사를 움직여나간 역동적인 인간집단을 말하며 민중의 이익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나 부르좌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라는 게그의 설명이다.
지배세력은 씨족에서 부족.삼국시대.고려.조선.현대로 내려오면서 소수의 집단에서 점차 사회적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한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이자 독창적 발견이다.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은 초판에서는 18단계,76년 개정판부터는16단계로 다시 구분돼 현재에 이른다.
『한국사신론』의 세번째 특징은 계속적으로 국사학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반영하며 내용을 수정하고 참고문헌을 자세하게 수록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고 설득력 있는 학설이 나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학문적 자세와 연관된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 오랫동안 대동강유역의 평양중심설을 믿고 있었으나 건국 초기에는 요동지역에 있었다는 최근의학계 연구결과를 수용,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참고문헌을 수정,추가하고 새로운 연구성과를반영하다보니 신론은 초판 4백65쪽이던 것이 90년의 신수판에서는 6백9쪽으로 1백30여쪽이나 분량이 늘어났다.
서울대 사학과 1회 졸업생으로 근대사학의 개척자 李丙燾선생의수제자였던 그는 서강대학교에 봉직하면서 국사학계에 소위「서강학파」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85년부터 한림대로 자리를 옮겨 내년 정년퇴임을 앞둔 李교수는 전형적인 한국선비의 분위기를 풍기며 역사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학계의 일반론을 따르지 않은 새로운 시대구분에 대해 반론이많았을텐데요.
『지배계급만이 역사를 창조하고 피지배계급은 무의미한 존재였느냐는 반론이 있었지요.그러나 내가 사용한 지배세력이란 말은 주도적 위치에서 역사에 참여한 인간집단이란 뜻이지 지배계급이란 뜻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에 와서 민중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다고 했는데민중은 지배계급이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같은 시대구분이 고대.중세.근대라는 3분법에 따르는 시대구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혀져야 올바른 시대구분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요. 『3분법적 시대구분은 서양에서는 의미가 밝혀져 있지만우리나라에서 어떤 구체적 뜻을 갖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한반론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중세를 봉건시대로 보는 경우에도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한국사를 변형적이거나 기형적인 역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동양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일관했다는 규정도 동양을 열등사회로낙인찍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의견들은 유럽형의 식민주의사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기반을 무시하고 수입된 사관에 무비판적으로꿰맞추는 것은 결국 주체적인 사학정립에 방해될 뿐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사관은 어떤 것입니까.
『특별한 사관의 이름을 붙이기보다 역사학의 정상적인 전통을 이어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보아주었으면 합니다.어떤 특수한 이론이나 힘 하나가 역사를 움직인다는 일원적인 해석에는 반대합니다.여러 요소의 작용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이것이 발 전해 나가는 양상을 본다는 의미에서 다원적.종합적 발전사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역사는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군요.
『자유를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사회,모든 인간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되는 사회,분배정의,크게는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발전된다고 봅니다.』 -우리 사학이 발전해야 할 방향은무엇이라고 봅니까.
『실증사학의 미시적 관찰,민족사학과 진보사학의 거시적인 통찰을 종합해 새로운 역사이론을 만들어 가는 일이 되겠지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은 무엇입니까.
『일반시민을 위해 쉽게 풀어쓴 한국사,아동을 위해 농업.전쟁.국토등 주제별로 쓴 분류사,그리고「한국사신론」의 개정작업등 세가지입니다.그것을 마치면「삼국유사론」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趙顯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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