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유화된 동구… 「집시」들은 서럽다(지구촌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테러에 떨고 차별에 울고/극우 빡빡머리들 버젓이 행패/「인종청소」유행어… 감원땐 “0순위”/“검은 피부 내쫓자” 공공연히 선동/“편견없이 교육기회를…” 지식인들은 포용론
2차대전 기간동안 독일 나치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동구의 집시들이 또 한차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 체코를 중심으로 인종차별 바람이 강하게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반집시운동이 다시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이후 이들 국가들이 처해있는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이다. 집시들은 인종차별을 금지한 공산정권 아래서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소비예트 블록의 몰락과 함께 집시들이 더이상 공산정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자 그간 당국의 눈치를 보며 참고있던 체코인들이 들고 일어서게된 것이다. 집시들은 이제는 공산정권이 마련해준 일자리마저 빼앗기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지난 4월 체코 미인선발대회에 참가한 막달레나 바비키양은 TV로 전국에 방송되는 가운데 『우리마을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내쫓겠다』고 말해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검은 피부」란 다름아닌 집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비키양은 이 발언이후 인기가 치솟았으며 많은 체코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며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바비키양의 고향인 우스티에 사는 폴락씨는 「빡빡머리 폭력배」들이 우리마을에 있어 즐겁다고 말할 정도다. 왜냐하면 극우파인 이들이 주민의 약 5%에 달하는 집시들을 못살게 혼내주기 때문이다.
이제 「인종청소」란 말은 체코에서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으며 집시들은 두려움에 떨고있다.
바비키양의 발언은 또한 인접 동구국가에서도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스피스케 포라디시 슬로보드니크 시장이 집시들에게 야간통행금지 포고령을 내렸다. 또 경찰에는 집시들의 집을 수색할수 있는 특별권을 부여했다. 시장은 범죄가 들끓고 있는데 이는 집시들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동구에 사는 수백만명의 집시들은 15세기께 이동해온 인디언의 후손으로 이 지역 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다.
그들은 검은 피부의 혈통과 고유언어를 유지해왔으며 풍부한 음악성을 지녔으나 대부분 문맹이고 가난하다.
헝가리 전체인구의 5%밖에 안되는 집시가 죄수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이 이들의 현실을 말해준다.
루마니아의 집시 80%는 실업상태에 놓여있다.
집시들은 대개 감원이 있을때 가장 먼저 쫓겨나며 마지막으로 취업의 기회가 주어진다.
구인광고에서 「집시사절」이란 구절이 자주 눈에 띄며,상점에는 「집시에겐 팔지않음」이란 안내문이 걸려있기도 하다.
집시지도자들은 집시에 대한 비난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높은 범죄율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며 능력이 아닌 인종차별 때문에 취업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다수 집시들이 게으르고 무식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읽기도 산수도 못하고 떠돌어다니게 된다.
프라하의 언론인 미할후사크씨는 『집시에게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반집시 바람속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집시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편견을 없애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한경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