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까지 가는 한­약 분쟁/전국 한의대생 “집단유급사태”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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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의 집단반발 약사법개정 혼미/정부차원 조치없인 해결 불가능
사상초유의 전국 8개 한의대 학생 2천5백∼3천여명의 사실상 유급확정사태로 내년도 대학입시와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한­약분쟁에 엄청난 파란이 예고되고 있다.
한의대생들의 유급사태로 94학년도 한의예과 신입생 모집정지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한의예과 지망생들의 지원자체가 불가능해져 혼란이 예상되며 현재 진행중인 약사법 개정작업에도 한의사들의 집단반발 등 파장이 일것으로 보인다.
약사법 시행규칙의 「약국의 재래식 한약장 설치금지」조항 삭제가 발단이 돼 계속되고 있는 한약조제권 분쟁은 한의사와 약사간의 기본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다 한의대생 문제에 대해서도 법령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어서 현재로서는 이번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한­약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치권 차원에서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추진위활동 미흡
◇집단유급=약사법개정 추진위원회 운영을 통해 한­약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보사부의 방침발표와 학교측의 설득으로 한의대생들이 7월초 1백여일간의 수업거부를 끝내고 수업에 복귀,일단 진정됐던 한의대 사태는 지난달 27일 경희대생들이 약사법 개정추진위원회의 활동이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2차 수업거부에 들어감으로써 다시 악화됐다.
1차 수업거부로 나머지 기간을 빠짐없이 수업 받아야 유급을 면할 수 있는 처지에 처해있던 한의대생들은 8월중순 동국대 등 7개 대학 학생들도 수업 재거부에 동참,집단유급이 사실상 확정됐다.
교육부는 17일 2학기 수업일수를 조정해 재수업 거부에 들어간 학생들의 유급사태를 막아보려는 학교측의 노력에 「학년제운영」이 교육법시행령에 명백히 위배된다며 엄정한 학사관리를 통보함에 따라 다시 수업거부에 들어간 학생들의 유급이 불가피함을 확인했다.
더구나 현재로서는 학생들이 수업에 복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다 2학기 개강일인 다음달 1일 집단휴학계를 제출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사태해결의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잇다.
집단 유급사태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의예과 진학을 위해 그동안 준비해온 학생들의 지원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전주우석대·세명대·동신대 등 수업거부를 하지않은 3개 대학과 나머지 8개 대학중 수업을 받은 일부학생의 숫자만큼 신입생을 모집토록 한다는 방침이나 전체 11개 대학 신입생 모집정원 7백50명중 6백명 가량은 모집정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계 입시 혼란
한의예과의 모집정지사태는 특히 지금까지의 경쟁률로 보아 4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한의대 지망학생들을 의예과나 치의예과 등 다른 의약계학과 등으로 몰리게 함으로써 지원판도 등 자연계 입시에 혼란을 가져올 전망이다.
◇약사법개정=보사부는 지난달 5일이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의 약사법개정 추진위원회 회의와 공청회 등을 통해 일단 약사의 한약조제자격을 제한하고 장기적으로 한방의약분업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약사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같은 방침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보건전문가와 시민·소비자단체의 의견을 주로 반영한 것으로 약사와 한의사는 그동안 상호 배타적인 기본입장을 계속 유지해왔다.
특히 한의사측은 한의학은 특성상 의와 약의 분리가 불가능하며 조제능력이 없는 약사들에게 한약조제를 맡기는 것은 국민건강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약사법 개정논의를 지켜본 한의대생들이 약사법개정 위원회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수업 재거부에 들어가게 됐으며 집단유급을 초래했다.
또 한의대생 학부모들도 보사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24,25일 보사부장관을 방문해 항의하는 등 약사법 개정위원회의 활동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한의사측은 집단행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의대생들의 유급사태로 보사부의 약사법 개정방안에 반대하고 있는 한의사들의 움직임도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보여 마무리단계에 있는 약사법 개정 작업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
○국민에 직접호소
한의사협회는 다음주로 예정된 약사법개정추진위원회에서 「약사의 한약조제 금지」라는 입장을 다시한반 밝힌뒤 보사부가 의약분업으로 한약조제권 문제를 매듭지으려 할 경우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린다는 방침이다.
보사부는 이해단체들의 집단행동에 단호히 대처한다는 입장이지만 한의대생들의 유급과 맞물려 한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약사법 개정작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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