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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군사외교 시대로/사상 첫 양국 함정 교환방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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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교 2년만에 영해까지 개방에 큰 뜻/「KAL기 참사 10주년」시점 맞춰 관심
한국과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체결한 「군사교류 양해각서」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함정방문을 교환키로 한 것은 군사 외교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인적교류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수 있다.
특히 지난 90년 9월30일 한­러 외교관계 수립 이전까지만 해도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양국이 수교 2년여만에 서로 영해를 개방할 만큼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그동안 양국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불과 10년전인 지난 83년 9월1일 동해상공에서 발생했던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을 돌아보면 실감나는 것이다.
함정방문이란 한 나라의 국기를 단 영토가 바다 위로 떠 다른 나라의 주권시대에서 치외법권적 권리를 인정받는다(영토부유설)는 점에서 군용기가 일시 기착하거나 교육시찰단이 상호 교환방문하는 등의 인적교류와는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함정방문은 「함포 외교」(GUNBOAT DIPLOMACY)로 상징될 만큼 위협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군함의 평화시 역할이 강조되면서부터 「우호의 확인」 「국력의 과시」 「국위 선양」(PRESENCE) 등의 정치외교적인 의미를 곧잘 인식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는 31일 러시아 태평양함대(또는 극동함대) 소속 최신예 구축함 3척의 부산항 방문이나 다음달 20일 한국 해군 구축함 2척의 블라디보스토크항 방문은 이같은 정치외교적 의미가 있다.
특히 러시아 방문단이 방한 이틀째인 다음달 1일 오전 부산항 함상에서 조기게양과 묵념을 올리는 등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으로 숨진 한국인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행사를 갖기로 한것도 함정방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군사외교적 의전행사라고 할수 있다.
해군에서는 러시아 함정 방한기간중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 10주년 추모일이 끼어있어 당초 일정을 연기해 줄 것을 제의했으나 러시아측이 이같은 위령제 계획을 통보해 옴에 따라 예정대로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러시아 방문단(단장 에고르 니콜라예비치 호멜리노프 중장·태평양함대 제1부사령관)은 지난 89년 건조된 최신예 우달로이급 대잠함(8천7백t급)가 구축함(7천3백t급)·급유선(1만1천2백t급) 등 3척의 군함과 함께 승조원 7백58명,무용단 52명을 포함해 모두 8백18명을 이끌고 4박5일을 머문다.
러시아 군함이 한국에 입항하기는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통상수호 조규를 맺은 이래 사상 처음이다.
우리측에서도 해군 1함대사령관(이수용소장·해사 20기)을 단장으로 지난 80년대 말부터 자체 건조한 1천5백t급 한국형 구축함 2척에 승조원 2백85명 등 모두 4백2명을 방문단을 구성,다음달 20일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입항해 3박4일간 머물며 각종 친선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한국함정이 러시아항을 방문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처음있는 일이다.
한국해군은 블라디보스크항 기항때 미키로브 해군사관학교와 미소 전략무기협정(SALT Ⅱ) 장소를 방문하고 현지 러시아주민과 교민들을 위한 각종 친선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이양호 합참의장 등 한국군 고위관계자들도 한국군 고위지휘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다음달 5일부터 7일간 러시아를 공식 방문해 러시아측과 우의증진 및 군사교류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 의장의 방문은 지난 6월 러시아측의 방문에 대한 답방이다.
군고위 인사들과 함정의 교환방문 등 한­러간의 군사교류는 그동안 두나라간의 관계나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상황,그리고 러시아의 군사·안보적 역할에서 볼때 단순한 친선의 성격을 넘어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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