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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국경삼천리를가다>1.백두산 이깔나무숲의 국경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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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韓民族의 淵源 백두산과 두만강.압록강을 잇는 北韓-中國국경 삼천리.백두산에서 발원하여 北韓과 中國.沿海州까지 삼천리 험난한 길을 쉼없이 내달리며 수백갈래의 크고 작은 지류들을 받아들여 동해와 서해로 들어가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北韓 .中國.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는 한반도의 출발선 강이다.특히 이 두 강은 日帝때 선열들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안고 건너 滿洲땅으로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이는등 설움과 恨,수난으로 얼룩졌던 우리 민족사가 줄기줄기 서려있기도 한「민족의 강」「어머니의 강」이다.
동해가 시작되는 北韓.中國.러시아등 3國의 접경지역 豆滿江 최하류 中國의 防川鄕(里)에서 출발해 白頭山 발원지와 鴨綠江을 거쳐 서해가 시작되는 新義州까지 중국쪽의 험한「작전도로」를 따라 한국 기자로는 처음으로 종주 취재했다.韓.中수교와 中國의 경제개방후 달라진 이 지역과 주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註] 頭山과 豆滿江(길이 5백20㎞).鴨綠江(7백90㎞)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北韓-中國 국경지대.
동해가 시작되는 北韓.中國.러시아 3국 접경지대에서 서해가 발원되는 新義州까지 北-中 국경 3천리(강변거리 1천4백여㎞)山河는 평온과 긴장이 혼재하고 있었다.
두만강과 압록강변 북쪽 中國지역은 국경을 경비하는 군인들을 거의 볼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반면 北韓지역 마을어귀와 산.강변.백두산 밀림등에는 비록 철조망은 없지만 2백~3백m마다 총과 망원경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서서 주민들의 동태 와 강건너중국쪽의 동향을 감시하는등 긴장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중국경지대 종주취재를 시작하는 두만강 하류에서 중국 공안당국의 한 간부는 『中-朝 국경지역은 중국인은 물론 조선족도 종주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민감한 지역이며 특히 남조선에서 온 신문기자임을 알면 북조선의 경비병들이 총을 쏘거나 붙잡아 갈 가능성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골치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중국측의 겁주기쯤으로 치부했던 이 말은 그러나 종주 20여일동안 곳곳에서 피부로 느껴졌고 특히 국경지대 북한경비대와 주민들의 생활실태등에 가까이접근하려 할때에는 북한 안전부요원과 경비병들에게 들켜 총으로 위협당하며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
두만강의 강폭은 최고 2백여m(주로 하류)에서 좁은 곳은 1m도 안되었고 압록강은 그보다 훨씬 넓어 최고 1㎞에서 최하 1m였다.
특히 해발 1천여m의 백두산 동쪽과 남쪽 밀림에 있는 두만강과 압록강 발원지는 강폭이 50㎝밖에 안돼 한발은 북한땅,다른한발은 중국땅을 딛고 설수 있는 실개천이었다.
두만강과 압록강 양쪽에는 폭2~3m의 가느다란 도로가 끝없이이어지는데 북한과 중국이 국경감시를 위해 만들어놓은 「변경도로」다.이 도로는 비포장 자갈길인데다 강 구비구비,그리고 깊은 산간지대를 끼고 돌아 험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쪽은 강변을 따라 이 도로외에 철로를 놓아 함경북도. 양강도.자강도등 산악지대 탄광에서 내륙으로 석탄을 운송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산간지방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중국의 국경지대 공안당국 간부(중국인)는 『이들 도로는 양국이 군작전용으로 개설한 것』이라며『중국은 지난해 러시아.북한 삼각 접경지역이자 동해가 시작되는 북한의 豆滿江市 건너편 防川鄕(여단병력상주)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국경지 대 경비를 맡은 무장경찰을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대부분 철수했다』고 말했다.
더이상 북조선을 의식해 국경을 수비할 필요가 없고 경제개방물결에 발맞추어 외국기업인들과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러나 『건너편(북한)은 중.한 수교이후 국경지대의 경비를오히려 강화했고 가끔 산너머에서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어 최근 나돌고 있는 북한의 국경지대 군단병력 이동설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중국쪽 국경에서 내려다 볼수 있는 동해가 시작되는 두만강시를 시작으로 신의주까지는 함북 샛별군.온성군.남양시.회령시.무산시,양강도 혜산시.후창군.김정숙군,자강도 중강군.만포시.시중군,평북 벽동군.삭도군.신의주시등 7개의 대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고 그 사이 사이엔 작은 마을과 작은 도시들이 국경을따라 줄을 잇고 있었다.
***이 들 지역 모두 예외없이 2백~3백m마다 총을 멘 경비병들이 강변을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도강이 불가능한 험악한 산악지대와 협곡등에선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두만강과 압록강 강변 도시와 마을 뒷산에는 예외없이「김정일시대를 빛내이는 보람찬 투쟁에서 청년영웅이 되자」「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위대한 수령만세,노동당만세」등 선전선동 구호가 널려있었다.
그리고 옥수수.콩밭을 매는 집단노동현장의 대형 스피커에선 선전.구호가 끊임없이 강과 계곡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병영생활같다」는 느낌을지울 수 없었다.
중국쪽 국경지대 경찰간부들과 주민들은『북조선이 이같이 국경지역 경비를 다그치고 있는 것은 인민들의 탈출과 밀수꾼.불순외부인들의 도강을 막기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만강 중류 연변자치주 白金鎭(면소재지)에서 만난 중국 무장경찰 간부는『두만강과 압록강 남쪽 도시와 마을(리)마다 있는 강가의 외딴 주택은 모두 북조선의 위장된 경비병초소로 보면 틀림없다』며『만일 북조선 내부의 권력충돌등 옛동독과 같은 위기가발생하면 두만강과 압록강 국경지대는 북조선주민들의 대탈출구가 돼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것』이라고 걱정했다.
두만강변을 거슬러 올라온지 열흘째 되는 날 오후 1시쯤,백두산 동쪽 해발 8백여m의 밀림.
강폭이 겨우 6m밖에 되지 않는 두만강 원류 지점이다.
백두산 기슭 마을 중국주민들에게 들은,「金日成이 백두산일대에서 빨찌산 운동을 할때 산천어를 잡으며 망중한을 보냈다」는 속칭「김일성 낚시터」를 찾았다.
타고 간 자동차를 3백여m 떨어진 숲속에 숨겨놓고 김일성이 앉아 낚시질했다는,사람 몸둥이 크기의 바위들이 맑은 계곡물을 삼키고 있는 폭6m의 계곡에 이르렀다.
계곡 한 가운데 2m가량을 비워놓고 양쪽에서 2m 길이의 판자 가교를 가설해 놓았다.
마침 그 곳에는 백두산밀림 벌목장에서 일하는 벌목인부로 보이는 중국인 4명이 야유회를 온듯 삶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일행 3명(기자.안내인.운전사)이 나타나자 반가운 기색을 했다.
건너편 가교위에는 사복차림에 모택동모자와 권총을 찬 안전부요원으로 보이는 40대 중반 남자와 AK소총을 멘 20대 경비병등 2명이 벌목장 인부들과 중국말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내인이 벌목공들에게 백두산 관광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사이 기념사진을 찍는 척하며 경비병등을 배경으로 몇차례 셔터를 눌러댔다.
***사 복요원과 경비병이 뒤돌아서서 몇마디 수군거리더니 경비병이 다리아래 오솔길을 50여m 가다말고 나무아래에 주저앉았다.경비병옆 숲속에 무장한 북한 경비병 10여명이 앉아있었고 한 경비병이 망원경을 들고 우리쪽을 관찰하는 모습이 숲사이로 보였다. 그 사이 필름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경비병이 다시 가까이 다가와「그림」을 연출해 주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경비병이 다시 다리위로 올라와 사복요원에게 귓속말을 주고 받는 사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봐 동무,지금 찍은 사진기를 이쪽으로 던지지 않으면 총소리가 날테니 즉시 던지라우.』 느닷없이 날아온 위협에 바짝 긴장했다. 경비병의 위협에 대꾸하자니 서울사람임이 탄로날 것 같아 쩔쩔매고 있는 사이 운전사가 다가와 카메라를 낚아챘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 어투로『동무,여기가 누구 땅인데 사진을못 찍어.여긴 엄연한 중국땅이야.미국돈으로 5백달러를 던지면 카메라를 주겠다』고 윽박질렀다.
경비병은『동무,잔소리 말고 카메라를 안 던지면 총밥이 될테니어서 던지라우』라며 메고 있던 총을 풀어 앞에 총 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그래,끝까지 못 던지겠다면 내가 건너가지』라면서 다리 아래로 내려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상황이 위급해졌다고 판단한 운전사는 기자의 손에서 카메라를 낚아챈후 필름을 빼내 펴 보이며 큰소리로 『자,이만하면 됐지』라면서 필름을 계곡물로 던졌다.
***그 리고 열린 카메라의 뒷면을 보이며『이만하면 됐지』라고 외친후『빨리 달아나자』며 손짓을 했다.
일행은 혹시 뒤에서 총을 쏘지 않나,계곡을 건너와 뒤따라 오지 않나하는 무서움을 뒤통수에 느끼며 백두산 밀림속으로 줄행랑쳤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밀림속에 있다는 朝-中국경비를 찾기위해 2시간여동안 이깔나무 숲속을 헤맸다.
해발 9백여m 지점.두만강의 발원지아래 수풀속에 북한과 중국이 지난 60년 국경재조정때 세웠다는「국경 21호비」가 수줍은듯 숨어 있었다.
높이 1m,폭 30㎝의 화강암으로 된 이 국경비는 북한쪽엔「조선 1960」,중국쪽엔「中國 1960」이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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