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경제논리로” 일본의 교훈(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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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에서 요즘 전기·가스요금 인하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엔화가치가 많이 올라 원유수입 대금이 싸졌으니 그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리자는 것이 전기·가스요금 인하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전기·가스업계에서는 최근 원유대금이 올라 인하할 여유가 별로 없다며 인하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또 전기요금을 내려봤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몇푼 안되므로 나눠쓰기보다는 국민경제발전에 유효하게 쓰자는 것이 인하 반대론자들의 생각이다.
엔고가 지난 2월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관측은 끝났다. 환차익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내리고도 남을 만큼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 내리겠다느니,못내리겠다느니 옥신각신하고 있다.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의 10개 전력회사가 약3천8백억엔(약2조6천4백억원)의 환차익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같으면 여론에 밀려 벌써 전기요금을 내려야 했겠지만 10월께 가구당 겨우 40∼50엔 정도 내리는 쪽으로 조정이 되고 있다. 정책결정이 우리에 비해 지나치게 늦다는 감이든다.
우리는 어떤가. 과거 86년초 국제원유가가 급격히 하락했을때 정부와 업계는 원유가 하락분이 국내유가에 반영되는 시간차,국제유가전망 불투명 등을 이유로 국내유가인하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여론의 세찬 비난에 즉각 기름값을 내려야 했다. 당시 한국이 기름값을 내렸을때 일본의 전력회사는 9천억엔 이상의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었으나 일본국내에서 기름값을 내리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으레 알아서 잘 할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때문이다.
전력회사는 『유가하락에 따른 이익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연구하겠다』며 즉각적인 가격인하를 미뤘다. 이익이 생겼다고 무조건 니눠쓰기보다는 전원개발·에너지절약·기술개발 등에 이를 유효하게 투자하겠다는 것이 당시 일본정부의 생각이었다.
이같은 일본의 생산자 중시,경제발전 우선정책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은 경제는 경제논리로 시간을 갖고 무엇이 국민경제에 좋은가를 충분히 검토한 뒤 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정치라는 잣대로 경제를 요리하지는 않는다.<이석구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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