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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철거 기쁨반 걱정반 정양모 중앙박물관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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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물 11만여점 서둘다가 손상되면 큰일/역사 산교육장 하루라도 문닫을 수 없죠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으로 현재 중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일제의 총독부건물이 헐리게됐다.
이 갑작스런 결정에 접한 박물관 관계자들은 요즘 걱정에 싸여있다.
일반인들이야 총독부건물이 헐린다니 시원하다며 박수를 치나 박물관 관계자들은 철거시 새 박물관 신축을 병행하겠다는 정부방침을 듣고 11만점에 달하는 유물을 앞으로 어떻게 보존·이전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민족문화 유산의 보고이자 민족교육의 도장이다.
이 보고와 도량이 옛 식민지시대의 상징인 총독부건물이란 것은 사실 대단한 모순이다.
○수치의 장 해체당연
그러므로 철거 자체에는 이론이 없으나 혹시 박물관 기능이 일시라도 정지되지않나 하는게 그들의 고민이다.
박물관은 자국인에게는 민족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자각케하고 외국인에게는 그 민족 정신의 뿌리를 편린이나마 접하게 하는 곳이다.
요즘들어 철거소식 때문에 박물관을 찾는 관객이 부쩍 늘었다는데,정양모 중앙박물관장을 만나 박물관 이전문제와 박물관 행정에 관해 들어봤다.
­정부가 총독부건물을 빨리 허무는데 정책의 중심을 두면 박물관 기능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요.
▲우선 이 건물을 철거하는데는 적극 찬성합니다. 다른나라의 왕궁을 부수고 침략의 본산을,그것도 풍수상으로 북악과 관악을 잇는 서울의 맥을 끊고 세워져있는 이 흉물을 그대로 둔 것은 사실 민족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현재 이곳은 박물관입니다. 민족의 유산을 수집,보관·전시하는 민족교육의 장이지요. 건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안의 유물을 통한 민족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총독부건물 철거는 박물관기능을 하루라도 정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시행돼야 합니다.
­새 박물관을 지어놓고 이곳을 헐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제 바람은 그렇습니다. 수많은 유물들을 보관·전시해야 할 곳을 마련하지 않은채 철거를 강행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박물관을 일상화물을 넣어두는 창고처럼 생각하는 발상일 것입니다.
이 안에 있는 유물들은 나이가 최소 백살입니다. 그것도 종이·나무·청동·철 등 재질이 제 각각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맞는 온도·습도·조명기 등이 완벽해야 손상이 안가지요.
그런데 철거와 신축이 급해 자칫 유물에 손상이라도 입게 되면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올 구입예산 1억뿐
그러므로 기초조사·설계에 완벽을 기해 새 박물관을 어느정도 지은 다음 이곳을 철거해도 늦지않을 것입니다.
▲박물관은 주위가 문화공간으로 합당하고 교통이 편리해야 합니다. 용산가족공원은 숲이 있는데다 강남·강북이 연결되고 자연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적당하다고 봅니다. 필동 수방사자리는 땅이 좁지요.
새 박물관은 부지가 최소 2만평,전시공간이 적어도 6천평은 돼야 통일시대에 대비하는 영구박물관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총독부 해체과정에서 경복궁이 다치면 큰일일텐데요.
▲폭약을 쓸때 특히 진동에 조심해야 합니다.
철거날짜가 정해지면 우선 경내에 있는 경천사탑 등 옮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옮길 예정입니다. 그러나 경회루·근정전 등 건물은 자칫하면 큰일납니다. 총독부건물이 워낙 단단하게 지은 화강암 건물이니 폭약사용은 극히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 건물을 완전 해체한후 없애는 쪽으로 방침이 정해졌는데요.
▲제 개인 의견으로는 축소해 독립기념관 한켠에 복원했으면 싶어요. 민족 각성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수치의 역사도 역사로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독부 건물해체 문제로 박물관이 갑자기 뉴스의 초점이 됐는데 예산이 많아 부족하지요.
▲부족한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명색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유물 구입비가 1억4천만원입니다. 보통 수준의 개인 수집가 구입비에도 못미칩니다. 지금 국립박물관에는 민죽미술의 태두인 겸제나 단원그림이 한점도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살수가 없지요. 최소한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접한 것은 이곳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큰 문제입니다.
지금 인사동 고화점에서 물건이 나와도 연락을 안합니다. 해봐야 돈이 없으니 못살걸로 알거든요.
­전문인력도 부족하겠네요.
▲유물보존과학자,이른바 유물의사가 필수적인데 지금 중앙박물관에서는 단 3명이 11만점이 넘는 유물을 진단·처방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될리가 없지요.
○위당 정인보의 4남
또 박물관 기능에는 대중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가령 복제품을 만들어 박물관 현장에서의 감흥을 가정에까지 연결해야 하는데 예산부족으로 그런 공작실이 없어요.
민속박물관 개관때는 중앙박물관의 기존 교육과를 아예 폐지하고 그 인원을 민속박물관으로 돌렸으니 한심합니다.
정 관장은 위당 정인보선생의 넷째아들로 우리나라 도자기사의 권위이며 62년부터 중앙박물관 학예관,경주박물관장(84∼86년),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금년봄 현직에 오른 우리나라 박물관의 산증인이다.<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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