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독서 즐기는「청빈의 은자」|"비오는 날엔 꼭 고궁산책"|원로 수필가 83세 피천득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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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필은 주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되는「수필」로 잘 알려진 수필가 피천 득 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시집 『생명』을 펴냈다.
「생명을 천착할」83세의 나이에 펴낸 이 시집은 그가 기 발표한 시들에 최신작 10여 편을 추가(모두 93편)해 엮어낸 것으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노 수필가의 건재함을 알리는 엽신처럼 반갑다.
일생을 서울대 영문학교수·수필가·시인의 삶을 분주하게 살았고 이제 『이 지상에 와서 사랑을 좀 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이 가장 소망스럽다』고 말하는 그.
주변에서「청빈의 은자」로 일컫는 그는 「버리고 떠나기」를 준비하는 사람,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조촐한 아파트 내 옹색한 살림은 그의 관심이 물욕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한눈에 느끼게 한다.
집주인이 이사를 떠나다 만 것 같은 텅 빈 집안, 부엌에 놓여있는 오래된 양은 냄비, 쉰을 바라보는 딸이 학생 때 썼던 것을 물려받아 30여 년째 쓰고 있다는 고물책상, 낡은 꼬마냉장고, 손바닥만한 선풍기… .
그의 공간은 세월이 한창 비켜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1백50㎝가 약간 넘을 것 같은 단구의 노학자는 요즘 아침마다 장시간 클래식음악에 심취하고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덕수궁이니 경복궁 등을 홀로 산책하는 일을 수십 년째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출생으로 중국 상해 호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45년 경성대에서 교직을 시작, 74년 정년을 앞두고 서울대 교수직을 떠났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딸 서영이가 오라고해서」미국으로 떠났었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자식들의 짐이 될 까닭이 없다』는 이유로 1년에 한차례 정도 그들을 잠시 보러 다녀올 뿐 지금은 역시 여든을 앞둔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 「아주 조금 드는」생활비는 책의 인세, 그리고 자식들이 부쳐주는 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그가 자신이 일생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서영씨(47)는 현재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교수로 그의 외동딸.
연극인으로 한때 음악 DJ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장남 세영씨(54)는 현재 캐나다에서 치과 기공소를 운영하고 있고 차남 수영 씨는 미국에서 소아과의사를 하고 있다. 『요즘도 계속 책을 읽어서 인지 아직 제자들에게 늙은이 취급은 안 받고 산다』는 그에게 요즘 걱정이 있다면 노인들에게 흔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
대학 은퇴 후 일체의 「감투」나 대회 등을 피해왔다는 그의 일과는 단조롭다.
집 근처 고수부지를 산책하는 일, 20년간 모아온 그림엽서를 감상하는 일, 테이프로 들을 수 있는 시와 수필들을 감상하는 일,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윌리엄 워즈워스(영국)·월트 휘트먼(미국)들의 시집을 찬찬히 되새겨 보는 일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시상을 가다듬는다. 『문학은 반대되는 이데올로기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나 이를 결국 인간 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진정한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발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의 문학에 대해 『흥미는 없으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선지식만 접해 근본적인 정서가 결핍돼 있다』고 우려하는 그는 자극적이고 퇴폐적이며 비사회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그래도 맑게 하는데 문학의 순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평생 「남의 불행을 딛고 선 행복은 죄악이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는 그는『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 불평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밝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화 목소리에서 전혀 여든을 넘긴 노인임을 느낄 수 없는 그는『남들이 내 목소리를 들으면 모두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며 자랑했다.
하루 두끼, 주로 야채를 소식한다는 그는 늙은 제자들이 가끔 들러 얘기도 하고 먹을 것도 사다 줘 즐겁다며 환히 웃었다.
30년 『신동아』에 「파이프」라는 시로 등단, 「수필」「인연」「나의 사랑하는 생활」등이 담긴 수필집 『수필』『금아문선』『소네트 시집』(역서) 등을 펴낸 그는『내 작품이 몇 개라도 남아 계속 사랑 받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단풍이 지오 / 단풍이 지오. /피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 불는 나뭇잎처럼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 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위에 떨어지오.』(시「단풍」에서)
그의 생활처럼 그의 시는 맑고 단아하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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