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수돗물도 발암물질 안심 못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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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암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과연 안전한가.
식수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홍근 교수(환경보건)는 『수돗물을 만드는 정수장에서 염소로 세균을 죽이는 소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THM(트리할로메탄)이라는 발암물질이 생긴다』고 밝혔다. THM은 염소가 세균 몸체나 물 속에 버린 식품·분뇨 등에서 비롯된 유기물질과 결합해 생긴다는 설명이다.

<간암·신장암 유발>
그는『수돗물을 만드는 원수의 오염이 심할수록 THM이 더 많이 생긴다』고 지적하고 하천오염을 막는 것은 암 예방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약대 정진호 교수는『THM뿐 아니라 TCE(트리클로로에틸렌), TCDD(테트라클로로 다이벤조 파라다이옥신)와 여러 종류의 다환 방향성 물질 등 다양한 발암물질이 우리가 마시는 물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TCE는 전자제품·기계 등을 세척하는데 쓰는 유기용제로 간암·신장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물에 들어가도 잘 분해되지 않아 수돗물까지 오염시킬 수 있어 얼마 전부터 THM과 더불어 보사부의 음용수 수질 검사항목에 포함됐다.
TCDD는 제초제나 농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데 간에 심한 독성을 나타내 간암을 일으키는 강한 발암물질로 인체의 면 역체계에 손상을 주기도 하는 등 위험물질이며 극히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발암작용을 한다. 이 물질은 월남전 때 고엽제로 유명한 에이전트 오렌지의 주성분으로 많은 부작용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벤젠이나 벤조A피렌 등의 방향성 물질도 식수에 들어있을 수 있는 발암물질들이다.
정교수는『물 속의 중금속오염도 암을 일으키는 요소』라고 밝혔다. 중금속 중 카드뮴· 수은·납 등은 만성 독성을 가져 인체의 신경조직이나 비뇨기조직 등을 망치는데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이들은 간암·신장암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적은 양을 단기간 마신다면 큰 이상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중금속이 일단 몸에 들어오면 잘 배설되지 않고 축적되는 바람에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사람은 일평생에 걸쳐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기 때문에 비록 물 속 농도가 낮더라도 장기적으로 물에 들어있는 오염물질은 발암과 큰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물을 오염시키는 일부 발암성 농약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분해과정은 없어>
이런 물질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개 일반적인 수돗물 생산과정에서 잘 걸러지지 않는 수가 많으며 게다가 이들 물질이 오염돼 있어도 겉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수돗물 생산과정은 물을 흐리게 보이는 부유물질 등을 걸러내고 미생물을 이용해 분해시켜 맑게 보이게 한 다음 들어있는 세균 을 염소로 제거하는 공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발암물질을 포함한 오염가능성이 있는 개개의 독소를 별도로 제거하거나 분해하는 공정은 없는 것이다.
이들 발암물질은 양이 미량이라 당장 집단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관심의 영역에서 제외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는 암을 일으킬 수 있어 이에 대한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교수는 『하천 상류에 어떤 공장이나 오염원이 있으며, 거기서 어떤 발암성 독성물질이 많이 나올 것이냐에 대해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염가능성이 큰 독성물질에 대한 집중적 검사와 관리를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후·부식된 수도관도 발암과 큰 관련이 있다. 정교수는 『수도관이 부식돼 구멍이 나면 발암물질이 든 폐수나 하수가 바로 들어와 수돗물을 오염시킬 수도 있으며 쇠파이프 부식에 따라 많은 양의 철분이 물에 유입돼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활성산소 만들어>
미량의 철분은 인체에 필수물질로 이용되지만 많은 양이 몸에 들어오면 심장혈관질환· 뇌혈관질환·암 등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만든다는 것이다. 활성산소는 각 장기나 조직의 세포를 심하게 손상시키는데 활성산소가 세포핵을 다치게 할 때 암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쇳물·녹물은 바로 암을 일으키는 물인 셈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정문식 교수는 『선진국들은 몇 년을 주기로 정수장에서 생산한 수돗물과 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수질차이를 분 석, 수도관에 의한 오염정도를 점검하고 기준에 어긋날 경우 교체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우리도 이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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