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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맨입으로 안 되는 영화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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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는 한때 지방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영화를 가르친 일이 있다. 가르쳤다기보다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스스로 눈을 뜨고 열중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때 연극 쪽은 차범석 교수가 맡았는데 우리 이름을 보고 찾아왔다는 지망생들이 많아 실기시험 때는 2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수험생은 교수 앞에서 3분 내에 실기시험을 치른다. 제한된 시간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다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지금 한국에는 50개 대학에서 연극영화과와 그 유사한 과에서 8천여명이 공부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영화 관련 학과가 5개 대학에 그치고 연극과 영화를 엄격하게 분리해 가르친다. 인구비례로 볼 때 우리는 대책이 없을 만큼 많은 학생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문교부의 구조조정 때 어떤 정신나간 관료가 연극과 영화가 뭐가 다르냐며 합쳐버린 것도 혼란의 원인이다. 후고 뮌스테르베르크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연극과 영화는 회화와 조각만큼 다르고 영화는 그 서술구조 면에서 오히려 소설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소설가 김승옥.최인호씨의 영화는 빛을 봤는데 연극연출가 이해랑 선생.김정옥 교수.이윤택씨의 작품은 관객동원에 실패했다. 배우만을 놓고 보면 연극과 영화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밀착돼 있는 연극무대와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루는 영화기술은 별개의 것이다. 배우의 연기도 엄연히 구별된다. 연극배우는 지속적인 연기로 막이 내릴 때까지 버텨야 하지만 영화배우는 토막연기를 필름에 담고 편집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작품의 전후관계 흐름을 파악하는 훈련과 순발력이 필수다.

한국의 방송 3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속극을 방영하고, 서울의 소극장 수도 70개가 넘으니 기록적이 아닌가. 그러나 졸업생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경쟁에서 그들은 전공이 다른 학생들과 경합하게 되지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양.이론 공부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기교육이다. 연극은 작은 무대와 조명만 있으면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영화는 기재와 시설 없이 맨손이나 입으로만 가르칠 수 없다.

16㎜ 카메라나 비디오로 영상작업을 하기에는 현대의 기술이 너무 앞서 있다. 디지털 녹음, 컴퓨터 편집, 그래픽 합성, 돌비 서라운드 등의 최신기술을 접할 수 없는 학생들은 아마추어 수준에서 맴돈다. 그런데도 학교는 비싼 기재나 시설 없이 연극처럼 가르치기를 원한다. 어떤 전문대에서는 영화 쪽 학생을 줄이고 말았다.

옛 소련에서는 교양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을 모두 촬영소로 파견했다. 그곳에서 전공을 찾아 현역 영화인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작품에 참여하고 학점을 인정받았다. 우리처럼 체험교육도 없이 졸업을 한 젊은이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며칠 전 이웃집 아들이 영화과에 합격했다고 자축연을 열었다. 감독이 끌어줘야 뭐가 된다고 나를 굳이 상석에 앉혔다. 옆자리 한의원 아들이 15년 전 바로 그 과에 30대 1로 입학했는데 지금 청년백수가 된 지 10년인 것을 이웃이 다 안다.

지금은 필름에 옮긴 것을 모두 영화로 취급해 습작도 없이 성급하게 메가폰을 잡은 신인들이 제작자를 죽이고 자신도 침몰한다. 50%의 점유율을 구가하는 성공작들 그늘에서 한국영화의 80%가 소리없이 무너진다. K교수는 대학원생 20명을 지도하는 데 장래가 안 보이는 데도 열심히 공부하니 그 꿈을 누가 깰 수 있느냐고 했다.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꿈꿀 수 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세상은 복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김수용 영화감독

◇약력:서울대 사범대 졸, 한국전쟁 참전(대위 예편), 극영화 1백9편 감독, 전 청주대 교수, 예술원 회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