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으로 바꿀때/편법동원 가능성/실명제 탈출 검은돈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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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큰손은 휴면법인 이름통해 거액 출금/장기채권 사면 20년동안 전환불필요
금융실명제는 모든 돈에 예외없이 「진짜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까.
또 예상보다 훨씬 빡빡하게 짜여졌다는 현행 실명제의 그물을 빠져나갈 「검은 돈」들은 과연 없는 것일까.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다하더라도 가명과 차명의 합쳐 줄잡아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없는 돈」중 상당액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마련이며 실제로도 허점이 노출될 가능성이 도처에서 보이고 있다.
실명관리를 계좌별로만 하고있는 현행제도 아래서는 실명화를 피하는 여러가지 편법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완전한 실명제는 궁극적으로 모든 소득이 개인별로 파악되는 종합과세가 실시돼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금융기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차명계좌의 실명전환은 많은 편법이 동원될 소지가 있다.
과거 치열한 예금유치 경쟁이 벌어졌을때 각 금융기관은 세금우대상품이 계좌당 일정 한도내에서만 혜택이 주어지는 점을 악용,다른 사람의 명의를 훔쳐(도명) 이들의 명의로 고객의 돈을 쪼개 들어주는 방법을 써온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이번 전환기간중 실명으로 전환하고 세금을 추진해야 하나 도명행위가 금융기관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당고객들의 항의가 거셀 것이 뻔하다는 전환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비리가 드러날 소지도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에서는 분란을 피하기 위해 일단은 이들 계좌에 대해 실명확인을 않고도 확인한 것으로 꾸며 놓거나,이름을 빌려주거나,도용당한 사람을 찾아 합의를 봐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공모를 잡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다.
「큰손」들은 이보다 좀더 조직적인 방법을 쓸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경우 3천만원이상 인출하면 국세청에 통보되는 등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지만 법인의 예금계좌는 이런 제약이 없다. 이를 노린 일부 「큰손」들은 사업자등록은 되어있으나 활동은 하지않는 휴면법인이나 사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등록한 법인을 이용,이들 이름으로 실명전환한 후 유유히 거액의 자금을 빼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들 법인을 없애버리면 세금추징이나 자금조사는 자연이 불가능해진다.
장기채권 등을 이용해 자금을 숨기는 방법도 있다. 이미 발행된 채권·수익증권 등을 실물로 보유한 사람은 이를 금융기관에 매매하거나 상환받을때 실명을 확인토록 되어있다. 이에 따라 3∼20년짜리 장기채권을 사두면 길게는 20년후에나 실명을 밝히면 되므로 재산을 숨기기엔 그만이다.
실명제는 또 큰 전주들이 버티고 있는 사채시장을 몰락상태로 몰아넣고 있지만 소규모 자금을 다루는 「중간손」들은 이로 인해 오히려 암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경제정의를 거스르는 「검은 돈」들이 실명제를 비웃으며 빠져나가지 않도록,그리고 「깨끗한 돈」이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누수여부를 체크하고 신속한 보완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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