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재산 수천억" 임대식씨 『역사 비평』에 축재 과정 등 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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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토지 문서를 차곡차곡 쌓으면 방안 천장까지 닿고도 남았다는 이완용의 재산은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근세사를 전공한 임대식씨(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는 계간 『역사 비평』 가을호에 「이완용의 정치 사상적 변신과 재산의 축적 과정」이란 제목으로 2백50여장에 이르는 장문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봉 이씨의 한미한 집에서 태어난 이완용(1858∼1926년)이 먼 족척인 명문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간 뒤 출셋길에 나서 수구파·친미파·친러파·친일파 등을 차례로 거친 행적은 대개 알려져 있다.
임씨는 이 논문에서 이러한 이완용의 변신 과정과 함께 당시의 신문·잡지 등에 실린 자료를 근거로 이완용의 재산 규모와 그 축적 과정을 추적했다.
임씨가 사용한 자료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구 한말 신문과 일제 시기의 신문·잡지, 그리고 그의 비서이자 생질이었던 김 명수가 쓴 『일당기사』 등.
임씨는 이완용의 재산을 전답·임야, 가옥·대지, 그리고 현금으로 나누어 소개했는데 전답·임야는 수백만평을 웃돌며 전체 규모는 1925년 발간된 『조선 귀족 약력』 자료에 따르면 3백만엔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전답·임야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 12도에 빠짐없이 산재해 있었다는 것. 목포 부근의 수십만 평과 전답 6백∼7백석지기 땅, 경남 진주 70여만석지기 땅, 전북 만경 5천∼6천석지기 땅, 경기 김포 2백정보 이상, 김포 성하면 1백 25석지기 땅, 연희동 30만평, 전북 익산 임야 36만평, 경기 고양 항동 임야 2만여평 등이 있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충남 아산, 경기 용인·고양·김포 등 출생지·선영·시조 묘·장남 묘지 부근 곳곳에 엄청난 땅과 임야를 가지고 있었다고 임씨는 밝혔다.
이완용 재산의 총 규모는 3백만엔으로 당시 현미 1석이 26원, 하루 노임이 1∼3원이었던데 비추면 현재는 수천억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임씨는 이 논문에서 이완용의 재산 축적 과정을 양부의 유산·권력형 부정·열강에의 이권 불하 대가·은사금·회사와 은행 운영·토지 불하와 점탈·영농과 소작료 수입 등 8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완용 재산은 해방 후 맏손자 이병길에게 상속됐는데 그는 반민특위의 형식적 재판을 통해 재산 2분의 1 몰수형을 받는데 그쳤다.
특히 이완용 재산 중 전답은 토지 개혁을 통해 대부분 불하되어 현재 이완용 후손이 되찾으려는 재산은 대지와 임야가 주 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씨는 이 논문에서 이완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무수한 민족 반역 공범자들의 상징적 대표자이며 재산 축적도 이 방면에선 가위 모범적인 성공을 보였다』고 말했다.<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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