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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집안 잔치』 안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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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화·경제·과학의 올림픽」 대전 엑스포가 지난주 화려하게 개막됐다. 「마스코트 꿈돌이가 행사장 옆 갑천 물 속에서 인류를 문명의 새 빛으로 승화시킨다」는 자못 거대한 포부를 안고 태어나면서 각종 첨단시설·장비 등이 일제히 가동되고 하루에도 십여만명씩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대회 조직위는 관람객을 당초 예상보다 3백만명이 늘어난 1천3백만명으로 잡고 느긋해 하고 있다. 참가국도 1백9개국이나 되고 규모도 사상 최대라고 열을 올린다. 그 말이 맞긴 맞다. 참가국 수에서 그렇고 정부와 국민 지원에서도 그렇다. 언론도 나라 체면을 감안, 말을 삼가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한구석에 몹시 켕기는 곳이 있다. 국내 잔치에 불과하다는 허전한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 외에는 애써 차려 놓은 밥상을 먹어줄 손님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초 조직위는 세계박람회 본연의 뜻대로 외국 관람객 50만명 이상을 유치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개최가 다가오면서 그 목소리는 줄어들었고 급기야 숫자가 약간 미달될 것이라고 슬며시 수정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를 자세히 뜯어보자. 무엇인가 국민의 눈을 속이는 구석이 있다.
한해에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은 3백20여만명. 관광공사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91년도에 3백20만 명이고 92년도는3백23만명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올해에도 3백20만명은 한국을 찾을 것이고 엑스포 개최 기간 3개월 중 적어도 80만명의 외국 손님들이 서울과 경주·제주 등지를 맴돌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80만명이 내한할진대 세계 최대 잔치라는 대전 엑스포는 당연히 목표를 초과 달성해야 할 법하다.
그런데 대전 엑스포 전시장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우선 진입로 도로 교통 표지판부터 태부족이어서 지리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있다. 간신히 전시장 근처에 와도 행사 요원들이 접근을 통제하고 있고 교통 체증이 가중되고 있다. 비가 오거나 햇빛만 내리 쬐어도 관람객들은 전전긍긍해야 한다. 딱히 앉아 있을 곳도 많지 않다.
우리말을 쓰는 우리 국민도 그러니 외국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전시물들은 한글로만 돼 있고 표지판들도 한글 일색이거나 영어가 조그만 글씨로 붙어 있을 뿐이다. 상영되는 영화나 방송도 통역이 가능한 다중 방송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있다.
조직위는 개막 일이 다가 오면서 외국 관람객이 예상보다 줄 것으로 전망되자 국내 홍보에 주력했다.
언론의 협조를 얻었고 마침내 국내 관광객이 몰려오자 이젠 고자세가 됐다. 내국민 푸대접이 시작됐고 주차를 통제하는가 하면 관람객을 접근 금지시키는 곳도 많아졌다.
그러면 국제관에 참가한 각국들은 어떤 홍보를 하고 있을까. 선진국일수록 참여도를 따지고 있고 자료들도 나눠주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무려 12년 뒤에 벌어질 아이치·나고야 박람회 홍보 팜플렛과 브로슈어를 나눠주고 있다.
이웃나라의 잔치에 참가, 장·단점을 따져가며 전세계 1백9개국 1천3백만명에게 느긋하게 홍보하는 슬기를 우리도 이번 기회에 배워야겠다.【대전=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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