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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공포의 이름, 연쇄살인범 조디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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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다. 끝내 잡히지 않았던 조디악은 언론을 이용해 스타가 됐다. ‘세븐’ ‘파이트 클럽’의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조디악’은 조디악의 범행이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리고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사회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인간은 왜 인간을 죽이는 것일까? 누군가가 죽으면 주변 사람들부터 수사를 시작한다. 돈이나 원한, 혹은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의 이유를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사회를 증오한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를 죽이기도 하고, 그저 내면의 충동이나 쾌락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왜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왜 살인마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연쇄 살인마가 등장했다고 하면, 해외에서는 떠들썩하게 모든 매체가 집중 보도를 한다. ‘올리버 스톤의 킬러’에서 묘사된 것처럼 살인자의 팬이 생기기도 한다. 감옥에 있는 살인마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은 부지기수이고, 때로는 옥중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살인마가 록스타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살인의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도 숨어 있는 무엇 때문은 아닐까?
 
스타로 군림한 연쇄살인범, 조디악

‘조디악’은 절대로 살인자를 미화하거나, 살인을 정당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게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아가는 경찰과 기자 등의 시각으로만 살인을 바라보고 있다.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에 편지가 배달된다. 편지에는 68년과 69년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함께 자신이 범인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자신을 조디악이라고 칭한 범인은, 자신의 암호문을 신문 1면에 실으라면서 만약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살인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조디악은 계속 범죄를 저지르며 편지를 보냈고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조디악’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다. 극장형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고, 자신이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을 한다. 조디악이 극장형 연쇄살인범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조디악은 “…언제 살인을 할 것인지에 대해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앞으로 저지를 살인은 단순강도나 우발적인 살해, 사고 등으로 보일 것이다. 너희들은 날 잡지 못한다. 난 너희보다 영리하니까…”라고 선언하는가 하면, 자신의 ‘인간 사냥’을 1932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 ‘가장 위험한 게임’에 빗대어 과시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대중매체에 선전하면서도 끝까지 잡히지 않은 조디악은 연쇄살인범의 우상이 되어 모방범죄가 나오기도 했고,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다.
 
조디악을 쫓는 사람들

자신의 정체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스타가 된 조디악은, 당시의 대중에게 끔직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걸작 ‘세븐’을 만들었던 데이비드 핀처가 ‘조디악’을 만들게 된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62년생인 데이비드 핀처는 조디악이 언론에 공개되고 계속 범행을 저질렀을 때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연쇄살인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른들이 느끼던 공포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조디악’을 만들게 했고, 조디악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디악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빨려들게 했다.

‘조디악’의 주인공은 사건을 맡은 형사 데이비드 토스키와 윌리엄 암스트롱,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기자인 폴 에이브리와 만평가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다. 그들은 각자의 시선과 추리로 범인을 쫓는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을 겪어야만 한다. 토스키와 암스트롱은 확신했던 범인이 증거부족으로 풀려난 뒤 망연자실하며 물러나고, 에이브리는 마약중독으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레이스미스만이 마니아적인 집념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조디악의 정체를 쫓는다. 데이비드 핀처는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조디악과 함께 걸어온 길을 성실하게 따라간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관객에게 던져준다.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 영화에 가깝기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디악’은 보는 동안 내내 이상한 흥분과 공포에 빠져들게 한다. ‘세븐’의 암울한 슬픔과 달리 ‘조디악’은 어딘가 들뜬 듯한 미열로 가득하다. 그리고 쉽게 눈치 챌 수 없는 섬뜩함이 있다.
 
진짜스타는 누구인가

‘조디악’은 보통의 스릴러 영화와는 전혀 다른 보법으로, 관객을 기묘한 스릴에 빠지게 한다. 범죄가 있고, 단서가 하나 둘 드러나고, 범인의 정체가 좁혀지는 것은 동일하지만 ‘조디악’은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진짜 관심은 조디악의 범행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리고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사회 그 자체다. 조디악을 스타로 만든 것은 언론이었다. 그것은 살인자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 때문이다. 언론사는 알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그의 편지를 실어주면 판매부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좇아가는 방법만 알았을 뿐, 대중에게 진정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에이브리가 마약중독에 빠진 이유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레이스미스는 계속해서 조디악에게 집착한다. 그는 조디악과 정면승부를 하는 길을 택했다. 대중이, 언론이, 사회가 조디악이라는 ‘환영’에 빠져 흔들리고 있을 때 그레이스미스는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했다. 그 대결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을 알면서도, 그레이스미스는 조디악을 정면에서 보고 싶어 했다. 타락한 세상에, ‘세븐’에서 연쇄 살인마를 보내고 ‘파이트 클럽’에서 테러리스트를 보냈던 데이비드 핀처는, ‘조디악’에서 보이스카우트 정신에 투철한 소시민 마니아를 내보내 정면승부를 벌인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레이스미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그게 조디악의 범죄보다도 더욱 위대해 보인다. 진짜 스타가 되어야 할 인물은 조디악이 아니라 그레이스미스 같은 소시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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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씨는 영화.만화.애니메이션.게임.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을 투시하는 전방위 평론가로 ‘B딱하게 보기’를 무기로 한 ‘봉석 코드’의 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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