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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 한나라당 경선 특집 '빅2'는 누구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호 05면

이명박 후보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우고, 뻥튀기 장사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학교를 다녔다.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몸으로 겪었다. 그는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에 사장이 돼 15년 동안 10개사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샐러리맨’ 신화였다. 서울시장에 당선돼 청계천을 복원하고, 버스체계를 개편했다.

이명박 추진력 앞세운 실용파 #박근혜 신뢰로 무장한 원칙파

박근혜 후보는 비운(悲運)을 극복해낸 정치인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숨지자 22세부터 5년간 퍼스트레이디 대리를 했다. 27세 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다.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낱낱이 봤다. 은둔의 세월을 거쳐 15대 국회에 진출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무너지던 당을 121석 거대 야당으로 일으켜세웠다. 당대표로 재·보선에서 40전40승의 신화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리더십 토대는 판이하다. ‘실용’(이명박)과 ‘원칙’(박근혜)의 대결로 압축된다.

이 후보는 CEO 출신답게 효율과 성취를 중시한다. 기존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효율성 때문이다. 참모들을 경쟁시켜 최적임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그래서다. 서울시장 시절 버스업자와의 유착을 막기 위해 핵심 인력을 통째로 교체하는 강수를 쓴 것은 일을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청계천 복원 때 반대에 부닥치자 끝까지 상인들을 설득하는 길을 택했다. 공무원들은 4200여 차례 상인들을 만났다. 일에 대한 이같은 집념이 이명박 브랜드인 ‘추진력’을 낳았다.

박 후보는 약속을 중시한다. 손해를 봐도 약속을 지킨다. 원칙에 맞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당 대표이던 2004년 총선 때 충청도 유권자들에게 한 ‘행정복합도시법’ 통과 약속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의원들과 비주류는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며 반발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반대했던 비주류들에게 당 혁신을 맡겼고, 그 혁신안에 따라 대선 1년6개월 전 대표직을 그만뒀다. 이런 결단은 ‘신뢰’를 박 후보의 정치 브랜드로 만들었다. 참모와의 관계 출발도 신뢰다.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쓴다.

정작 이 후보와 박 후보의 가장 단순한 차이는 성(性)이다. 두 사람의 대결 자체가 대선 길목에서 유력 주자로 떠오른 남녀 후보가 우리 역사상 첫 성대결을 벌인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것인지가 변수다.

두 사람에겐 약점과 한계도 있다.

이 후보에겐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적잖은 의혹이 제기됐다. 위장전입 외에 사실로 명확히 규명된 것은 없지만, 명쾌히 해명됐다고 보지 않는 이도 많다. 박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산업화라는 박 대통령의 업적은 후광이 되지만, 박 대통령 시절의 유신과 인권탄압은 부정적 그늘로 작용한다.

이런 점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사유인가는 결국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이 후보가 청계천을 살려냈듯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낼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을 갖는다면 그의 약점은 가려질 수 있다. 박 후보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 선진화의 기적을 이뤄낼 자질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의 태생적 한계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두 후보가 국민 앞에 내놓은 선거 슬로건은 이 후보가 ‘경제! 확실히 살리겠습니다’, 박 후보가 ‘5년 안에 선진국!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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