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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불륜 남녀의 감각적 '러브스토리'-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호 14면

불륜만으론 약하다고 판단한 걸까. 더 독해진 충무로가 들고나온 소재는 ‘크로스 스캔들’. 두 부부가 상대 배우자에게 엇갈린 채 빠져든다는 설정이다. 네 남녀의 교차하는 연애관계는 허진호 감독의 ‘외출’(2005)을 뒤잇지만, 서로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한 뼘 더 파격이다. 대신 ‘모른 채 우연히’를 강조하고 한 커플의 정사는 지연·배제해 논란을 최소화했다.

‘크로스’의 시작은 넷이 한 곳에서 소개받는 자리다. VIP 패션 컨설턴트 서유나(엄정화 분)와 성실한 호텔리어 정민재(박용우 분)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화목한 부부다. 반면 일밖에 모르는 건축사업가 박영준(이동건 분)과 조명디자이너 한소여(한채영 분)는 대화가 거의 없는 상류층 부부다. 이질적인 데 끌리는 것은 연애의 공식이다. 한소여와 박영준이 홍콩 출장을 동행하는 동안 서울에선 서유나가 정민재를 고객으로 담당한다. 두 종류의 격정이 홍콩과 서울을 불사른다. 한쪽에선 아슬아슬한 이끌림의 욕망, 다른 쪽에선 화끈한 밀고 당기기의 충돌.

영화는 마치 로맨틱 코미디와 불륜 멜로를 섞어놓은 듯 진행된다. 기싸움이 발단이 돼 서로 빨려드는 유나-민재는 신세대 연인을 보는 듯하다. 반면 연민에서 시작해 거침 없는 정사로 이어지는 소여-영준은 전형적인 불륜 코드다. 소재만 파격이지 관객이 보는 것은 두 종류의 상반된 연애담이다. 게다가 최재원의 감칠맛 나는 코믹 연기는 불륜극에 적절한 농담까지 입혀 긴장감을 상쇄했다. 패션 컨설턴트, 조명 디자이너 등 이색 직업에 감각적인 세트·미술·음악까지 영화는 잘 진열된 장식장 같다. 대담하고 억척같은 엄정화의 캐릭터도 노련하고, 갓 결혼한 한채영의 정사 신은 일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소재의 도발성과 따로 논다. 결말부에 ‘크로스’가 알려진 뒤 네 남녀의 심적 혼란은 영화의 관심 밖이다. 사실 굳이 ‘크로스’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톡톡 튀는 맛깔스러운 대사 속에서 ‘결혼하면 사랑은 끝?’ 같은 실존적 문제를 논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잘 계산된 상업영화의 한계이자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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