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꺼리는 미 정책결정(특파원 수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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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도로포장에 폐타이어 활용에도 고심거듭
미 의회의 환경 및 공공사업 위원회는 요즘 색다른 정책의 시행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고 도로망이 잘 정비된 미국에서 도로포장을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나라인 미국에서 1년동안 버려지는 폐타이어가 무려 2억5천만짝에 이르는 점을 착안하여 이 폐타이어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한 끝에 도로포장을 하는데 기존의 아스팔트에 타이어를 잘게 부숴 사용하면 좋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아스팔트에 타이어고무를 섞을 경우 승차감이 월등히 높아지는데다 제동거리도 짧아지는 등 도로안전에도 도움이 될뿐 아니라 지금까지는 아스팔트가 낡아 뜯어낼 경우 이를 다시 사용할수 없었으나 고무를 섞을 경우 사용된 아스팔트의 재활용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미의회는 94년부터 아스팔트포장에 5%의 폐타이어 조각을 의무적으로 놓고 이를 매년 5%씩 늘려 97년에는 아스팔트포장에 폐타이어 고무조각이 20%까지 들어가도록 하는 법안을 2년전에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시도인 만큼 경과규정을 두어 이러한 포장이 환경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 및 경제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따라서 금년에 이 연구결과를 가지고 최종으로 이 법을 시행할 것이냐의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연방고속도로청(FHA)과 환경보호처(EPA)는 2년간의 합동연구결과를 최근 의회에 제출했는데 연구결과중 『고무도로가 인간이나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증거는 없으나 이것이 어디까지나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것』 『뜯어낸 고무아스팔트를 재활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으나 경제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등 모호한 결론을 냈다.
여기에다 서로 이해가 상반되는 집단간의 로비도 볼만하게 벌어지고 있다.
폐타이어를 이용한 도로포장을 겨냥하고 이미 20억개의 폐타이어를 수집매놓은 15개 고무도로 포장 회사를 대표하는 전국 고무도로포장협회와 기존의 아스팔트 포장업자간의 타당성에 대한 시비가 다시한번 붙어 있다. 기존 아스팔트업자는 심지어 『폐타이어가 설치류 동물과 뱀,그리고 곤충의 서식에 도움이되고 아이들의 놀이터에도 이용되니 폐타이어를 없에면 안된다』는 논리까지 내세울 정도다.
우리의 중북고속도로를 대통령 인척이 시멘트협회 회장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시멘트포장을 했던 과거의 우리의 정책결정과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문창극=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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