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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방송광고 대행 허용’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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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부가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 대행회사) 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사업자는 누구나 미디어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광고 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업무를 내년 중에 민간업체도 할 수 있도록 개방하려는 것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광고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내외 사업자의 공정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선 미디어렙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시행되는 만큼 KOBACO의 독점 체제 해소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ISD는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할 경우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미 FTA에서 광고시장을 제약 조건 없이 완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KOBACO 독점 체제를 유지할 경우 국내 방송시장 진입을 원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게 문화부의 주장이다. 현재 국회엔 손봉숙 의원(민주당)과 정병국 의원(한나라당)이 미디어렙 도입을 위해 2005년 발의한 입법안도 계류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알려지자 KOBACO에서 안정적으로 광고 물량을 받아 온 지역 민영방송사와 종교방송사가 극렬 반발하고 있다.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시청률이 높은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에 광고가 몰리게 돼 경영난이 심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KNN(옛 부산방송)과 강원·광주·대구·대전·울산·전주·제주·청주방송 등 9개 지역의 민영방송 모임인 지역 민영방송협의회는 7일 9개사 대표 공동 명의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협의회는 “방송광고 판매의 경쟁체제 전환은 지상파 3사의 독과점 현상의 심화로 방송의 공공성·다양성·지역성을 훼손하고 지역 민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불교·기독교·평화·극동·원음방송 등 종교방송 5개사가 문화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19개 지역 MBC 사장단협의회도 반대 입장의 의견서를 냈다.

시민단체도 미디어렙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지상파 3사에 광고가 몰림으로써 지역 방송이 쇠퇴하고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도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양 실장은 “방송사와 광고주 간 유착으로 방송의 저널리즘 기능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화부가 미디어렙 도입 배경으로 제시한 ISD 문제도 기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박원기 KOBACO 연구위원(경영학박사)은 “미디어렙을 도입하지 않으면 ISD에 근거해 외국 업체가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주장은 마른 하늘에서도 비가 올 수 있다는 얘기와 같은 것”이라며 “실제 우리나라가 이미 3개국과 FTA를 맺었고 80여 개국과 한 투자협정에도 ISD 조항이 들어가 있으나 아직까지 방송광고 판매와 관련한 소송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차진용 기자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팔고 판매 대행 수수료를 받는 회사. 정부는 1980년 한국방송광고공사를 설립해 공사가 미디어렙 역할을 독점적으로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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