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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법 바꿔야 할 「일제정리」/오홍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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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제의 침략으로 비롯된 망국과 질곡의 세월을 떠올리며 최근 잇따라 보도된 세가지 뉴스는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착잡함과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매국의 대가로 받은 욕된 재산을 대물림하도록 방임할 수 없다하여 국회에서의 「저지입법」찬성 서명자가 과반수에 이르렀다는 이완용 재산 처리문제가 그 하나요,상해 임시정부 선열 유해봉환과 엊그제 일본정부가 발표한 정신대문제가 또다른 두가지다. 이들 문제는 사실 오래전에 결론이 나고 정리가 끝났어야 했다. 그 큰 문제들이 해방된지 무려 48년이 지나도록 미해결의 장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도 착잡함이요,안타까움이다.
○48년 지났어도 미해결
이완용 재산문제는 해방직후도 아니고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그것도 헌법이 금하고 있는(13조2항) 소급입법이라는 무리수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건축초기 반민특위 실패를 되새기게 하는 대목으로,물론 일본의 침탈과 맞물려 시작된 비극이었다. 상해임정 선열문제는 못난 후손인 우리들 탓이 더 크다할 수 있으나 그토록 오랜 세월을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낯선 남의 땅 한 구석에서 잊혀져 있으며,이 역시 그 원인 제공자는 일본이었다. 그리고 저 정신대. 이 문제는 일본이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반성한다는 선에서 정부간에는 매듭이 지어지는 듯하니 그렇다고 우리들 가슴 밑바닥의 앙금이 말끔히 씻기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를 접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제일감은 일본에 대한 분노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일제의 「침략야욕」과 「만행」,나라를 팔어먹은 이완용 등 「매국노」들의 민족 배신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몸을 떨었다. 하여 바로 그 「일제의 침략야욕」과 「매국노」들만 없었다면,어쩌면 우리는 망국의 쓰라림을 맛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인식까지 가슴속에 자리잡는 지경이 되었다. 대일본 문제들의 해법을 찾을 때도 그같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화풀이식 발상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했다.
○왜 먹혔나 생각해봐야
그러나 사실은 그게 진작 바뀌었어야 할 발상법이다. 참으로 우리는 왜 일본에 먹혔었나 하는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것은 맞설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주 그 점을 미리 체념하거나 착각하는 것 같다.
이완용에 대한 시각만 해도 그렇다. 기록에 따르면 그에게는 세개의 얼굴이 있었다. 30세때 워싱턴의 주미공사관에서 1년정도 근무한 뒤 그는 「친미파」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30대 중반이후 학부대신·외부대신을 거칠 무렵에는 서재필이 창설한 독립협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애국자」가 된다. 학부대신시절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소학교 교칙대강」에섬 이완용은 『소학교육은 아동으로 하여금 존왕애국하는 사기를 기르고 신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무를 알게 하며,겸하여 염치의 중함을 배우게 하는데 있다』고 역설한다. 또 독립문 정초식에서 그는 『우리 민족이 합심·단결하여 독립을 지키면 우리나라는 미국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분열·상쟁하면 폴란드처럼 망할 것』이라고 연설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애국자의 얼굴이 이 무렵이다. 매국노는 그러니까 그의 세번째 얼굴인 셈이다.
○시대가 빚어낸 매국노
만일 당시 미국의 힘이 더 세어 보였다면 그는 그쪽으로 붙어 대일연합전선을 폈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우리의 국력이 외세를 당해내고도 남을 정도였다면 그는 역사에 남는 애국지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무렵 국력이 그렇게 허약한 상황에서는 이완용이나 송병준이 아니었더라도 장삼이사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매국노가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국가를 위해 한 몸을 희생하는 진짜 애국자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국력이 문제였다. 상해임정 선열의 사연이나 정신대의 비극도 모두 국력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체력이 떨어지면 잔병치레가 심해지고 병발증세가 나타나게 돼있다. 간신이나 매국노가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은 어느 조직 어느 나라에나 다 있게 마련이다. 건강과 힘을 확보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해방후에도 건강과 힘을 길렀다면 정신대문제를 공식 시인하고 사과받는데 48년씩이나 걸렸겠는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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