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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해놓고 “승복못하겠다”/김상진 사회2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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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종합목재 노조가 3일 실시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를 스스로 번복해버린데 대해 울산시민들은 『민주노조를 부르짖는 노조가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절차도 모르는가』라는 반응이다.
3일 현재 직장폐쇄 8일째를 맞고 있던 이 회사 노조는 지난달 31일 마련한 노사간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실시하기로 하고 투표에 들어갔었다. 대부분의 노조원이 투표를 마친 시간은 오전 11시쯤.
이어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개표는 낮 12시30분쯤 끝나 찬성 7백30표,반대 7백23표의 근소한 차이(7표)로 가결돼 6월15일 쟁의발생신고 이후 쟁의를 이끌어 온 노조집행부 간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측도 이같은 결과에 따라 직장폐쇄 철회를 위한 서류준비에 들어가는 한편 협상에서 약속한 하계 휴가비 15만원씩을 전 사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다 끝난줄 알았던 문제가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일부 강성 대의원들이 느닷없이 노조사무실로 몰려가 『조합원들의 투표가 다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표를 했기 때문에 결과가 뒤바뀌었다』며 투표무효를 주장해 삽시간에 조합사무실은 난장판이 돼버렸다.
이들의 항의가 워낙 거세자 노조는 곧 쟁의대책위를 열어 『투표가 끝난 줄 알고 개표에 들어갔으나 투표마감시간 전에 개표를 한 것은 투표진행 과정상 실수』라며 이들의 주장을 수용해 투표무효를 선언해 버렸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휴가비를 받아들고 총총히 회사를 빠져나가 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노조원들에게 하계휴가비를 지급한 회사측과 개표결과를 상부에 보고하기에 바빴던 노동부·울산시 관계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노조의 투표무효 선언이후 박성진 공장장은 성명을 통해 민주적이며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된 조합원 전체의 뜻을 무시하고 총회결과를 번복시키려는 일부 극력조합원들의 행위에 대해 단호시 대처하겠다』며 『앞으로 협상은 없고 4일부터 공장은 문을 연다』고 선언했다.
이번 사태는 집행부의 진행과정에 미숙함이 있기는 했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투표 결과에 승복할줄 모르는 일부 조합원들이 있는 한 우리의 노동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절감케했다.<울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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