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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수입 활기 방화제작 시들|올 영화제 걱정 태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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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해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지난해보다 훨씬 줄어든 60여편 선에 그칠 것으로 보여 영화계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만 해도 88편이 제작됐던 한국영화는 올 들어 흥행부진 등으로 크게 위축돼 현재로서는 60편을 채우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반기 중 공륜심의를 받은 한국영화는 고작 31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외화수입은 여전히 활기가 넘쳐 올해만도 4백편을 넘어설 전망이다. 88년 미국영화 직배이후 영화업자들이 질 높은 국산영화로 이에 대응하기보다는 안전한 외화수입에 치중하면서 제작 편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올 들어 흥행에서 참패를 거듭하자 더욱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올초 『웨스턴 애비뉴』의 흥행실패로 제작사인 이화예술이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6월에는 모가드 코리아가 부도를 내면서 제작 중에 있던 영화『비상구가 없다』가 표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도산·부도사태가 영화제작자들의 한국영화제작 기피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감소추세는 극장주들이 내세우는 스크린쿼타제의 축소 내지는 백지화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스크린쿼타제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불평하는 극장주들에게 한국영화의 감소는 『스크린쿼타를 지키려해도 마땅히 상영할 한국영화가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또한 한국영화제작을 대단히 「수세적인 기획」으로 몰고 가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적극적인 기획 자세를 버리고 기존의 히트작들을 모방 내지는 답습하는 안전위주의 기획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록적인 흥행성공을 보였던 『결혼이야기』가 몰고 온 로맨틱 코미디물의 일대 유행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 들어 『101번째 프로포즈』『그 여자, 그 남자』로 이어지는 이러한 흐름은 어느 정도의 흥행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미 그 열기가 지난해에 비해 훨씬 식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안이한 기획이 결국은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을 더욱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잠재관객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반기에 제작되는 한국영하들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싶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안전운행 위주의 흥행영화들로 채워지고 있어 관계자들의 우려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곽지균 감독의 『장미의 나날』, 이석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변신』,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등이 현재 제작중인 작품들로 멜러스릴러물 혹은 경찰영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기존 로맨틱코미디물 보다는 신선한 소재임에 틀림없지만 소재의 특이성보다 연출의 신선함에 치중하지 않는 한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영화 제작 감소 추세는 또한 역량 있는 신인 감독들의 출현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안전위주로 영화를 제작하다보니 자연히 연출자들도 어느 정도 흥행성적을 거둔 실적이 있는 중견급들로만 한정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신인감독들은 데뷔할 기회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참신한 영화적 상상력을 갖춘 신인감독들이 자기 능력을 현실적으로 검증 받을 기회조차 찾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장래를 생각할 때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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