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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대물림 의원」 잇따라 주역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고노에 전 총리 외손… 부친도 총리비서관/호소카와/자민 2인자 부친,64년 사퇴수상에 석패/고노/부친비서로 34세 입문… 나가노현 첫 당선/하타
「콩심은데 콩난다」­.
요즘 일본 정치판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며 실감하는 말이다. 비자민당 연립정권하의 차기총리로 확실시되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55) 일본신당 대표나 자민당 신임총재로 당선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정치개혁의 돌풍을 일으킨 하타 쓰노무(우전자·57) 신생당 대표 등 대부분의 새 정치 선두주자가 쟁쟁한 정치명가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일본정계에 정치명가 출신 의원들이 눈에 띄게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방분권적인 특성이 강한 일본의 사회현실상 지역유지가 정계에 진출해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지역주민들은 그 보답으로 해당가문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를 보내 대물림의원을 만들어주는 전통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호소카와는 구 구마모토(웅본) 번주 호소카와가의 18대손으로 2차대전 당시인 37년 총리를 역임한 고노에 후미마로(근위문□)의 외손자다. 그의 부친 호소카와 모리사다(세천호정)도 고노에 2차내각에서 총리비서관으로 정치활동을 하다 종전후 재계·문화계에서 활약했다.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의 소색을 위해 당내개혁의 책임을 한 몸에 지게된 고노 신임총재의 집안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부친 고노 이치로(하야일랑)는 하토야마 이치로(구산일랑)의 일본자유당에 몸담았다가 54년 제1차 하토야마내각에서 농상으로 입각,명실상부한 자민당내 2인자로 부상했던 인물이다. 히토야마 이치로는 그러나 64년 총재선거에서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에 밀려 총리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이듬해 사망했다. 노고 신임총재의 숙부는 참의원의장을 지낸 바 있는 고노 겐조(하야겸삼)이며 고노 총재와 함께 한때 신자유클럽을 결성,정치개혁을 주도하다 신자유클럽이 해체된 86년 진보당을 창당한 다카와 세이치(세천성일)가 외사촌이다.
하타 또한 부친의 후광으로 중의원에 진출했다. 그는 69년 34세의 약관으로 중의원 의원이던 부친 하타 다케시(우전무사)의 비서로 있다가 고향인 나가노(장야)현에서 출마,첫 당선의 영광을 얻었다.
총리나 당수는 아니지만 막강한 당내 영향력을 갖고있는 인물들도 정치적으로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기는 마찬가지다.
신생당의 대표간사로 있으면서 이번 대정치 개혁드라마의 연출자로 알려진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50)는 10선의원까지 지낸 오자와 사에키(소택좌중희)의 뒤를 이은 대물림의원이다. 그는 부친 오자와 사에키의 사망후 선거구를 이어받아 27세때 중의원으로 정계입문해 현재 9선이다. 오자와 사에키는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마부 등을 하며 고학으로 일본대를 졸업,변호사가 된 뒤 고향 이와테(암수)현에서 중의원에 당선됐으며 우정·건설상 등과 자민당 정조회장을 지낸 정계거물이었다.
미남으로 여성유권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으며 자민당내 소장파 가운데 오자와와 함께 선두자리를 다투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55) 전 대장상도 오자와처럼 부친의 후광을 입고 26세때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11선을 기록하고 있다. 하시모토 료로(교본용오)는 대장성 관료출신으로 요시다 시게루(길전무)의 관료친위대로서 제2차 요시다내각때 관방장관을 역임했으며 49년 오카야마(강산)에서 중의원에 당선된후 후생상을 지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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