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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한복판『전원생활』30여년|자연 벗삼아 "안빈낙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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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소리에 아침잠을 깨고, 계곡물로 밥짓고 세수하고, 다람쥐 벗삼아 하루해를 보낸다. 요즘 산골이나 농촌에서도 찾기 힘든 이런 전원생활을 30여년 넘게 서울 한복판에서 즐겨온 사람이 있다.
허재익 할아버지(83·서울 서대문구 홍제2동). 허옹의 보금자리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3㎞도 안되는 안산(해발 2백60m) 중턱에 자리를 틀고 있다. 안산은 동으로 인왕산을 마주하고 있는「한양 팔봉」중 하나인 서울의 명산.
허옹이 안산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 60년. 함남 북청의 한 산골마을 출신인 그는 과거 산 생활의 멋을 못 잊어 하던 차에 현재의 거처를 찾아냈다.
도원경이라 할만큼 아름답게 꾸며진 허옹의「영지」는 1천평 남짓. 산기슭에 기댄 듯 서있는 판자집 바로 앞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정원에는 온갖 과일나무·꽃들이 향기를 자랑하고 서있다. 정원 한 가운데의 한반도를 본뜬 연못 중앙에는 한 줄 분수가 쉼 없이 물을 뿜고,「태극바위」「의자바위」등으로 이름 지어진 희한한 생김의 바위들이 여기 저기 자리를 잡아 조화를 일궈내고 있다. 30여년 동안 허옹의 손때와 정성이 묻고 깃들여 탄생된「작품」그 자체다.
『자연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를 남과 함께 나누는 것이 제 삶의 보람이지요.』
허옹의 인생관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옹은 집에 전기를 들여놓지 않았다. 전기불도 TV도 모두 마음을 흐뜨려 놓기 때문이란다. 분수도 계곡물의 낙차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물을 뿜도록 만들었다.
식사도 생식을 주로 해 쌀을 그냥 불려 먹는 경우가 많다 영양보충을 위해 먹는 설탕 정도가 가공 식품으로는 주식에 낀다.
사과·배·포도·감·대추·앵두·살구·자두 등 그의 정원에서 생산된 과일도 주식량이다. 이들 과일은 제철이 되면 찾아오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한 접시씩 나눠준다.
허옹의 자연에 대한 애착, 자연스럽게 살려는 노력은 상당부분 선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새 키우기를 취미로 했다.
그는 지난 58년 농림부 주최 조류 출품전에서 꾀꼬리로 최우수상(농림부 장관상)을 탄 것을 비롯, 수차례 입상한 적이 있는 조류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또 개를 무척 좋아하는데 개는 촉감이 좋고, 새는 지저귀는 소리가 아름다워서 좋다는 것.
낮 시간 쉴틈 없이 정원을 가꾸는 허옹은 저녁식사가 끝나는 대로 사색에 잠긴다고. 어둠 속에 반가좌를 튼 채 하루를 정리하고 지난 세월을 차근히 돌아보는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허옹의 하루 수면은 2∼3시간. 보통사람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 수면시간이지만 그는 이 정도 잠을 자고서도 아주 건강하다.
허옹은 80중반의 노인으로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력·청력도 좋다. 신문활자보다 작은 글씨도 안경 없이 읽고 나지막한 목소리도 놓침 없이 듣는다.
그의 건강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허옹의 몸 가꾸기에 쏟는 남다른 열정도 단단히 한몫을 하는 것 같다.
허옹은 매일 오전 8시 꼭 집을 비운다. 운동하러 나가는 것이다. 얼핏 노인이 운동을 한다면 산보 같은 가벼운 운동을 떠올리겠지만 그것은 큰 오해. 그는 구보를 한다. 젊은이도 속도를 내기 버거운 안산의 등산로에서.
그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그것도 정상급 마라토너였다. 허옹은 74년 제1회 한국 노장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13회 대회까지 해마다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노장마라톤 대회 외에도 각종 마라톤대회에 참가, 모두 40여개의 우승컵을 거머쥔 왕년의 스타였다.
허옹이 65세 때인 75년 노장마라톤대회(25㎞)에서 세운 1시간26분은 당시까지 세계 최고의 기록이었다. 그는 벨기에·일본 등에서 열린 국제 노장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 바 있는 명실공히「국가대표」이기도 했다. 또 과거 손기정·남승룡 등과도 교분이 있었던 아마추어 육상계의 숨은 원로다.
영원한 현역 육상인으로 남고자 했던 허옹은 지난 87년 서울 응암동에서 연습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크게 낙담했지만 최근 건강을 회복해 운동을 재개했다. 몇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몸 만들기에 들어간 그는 내년쯤 다시 마라톤대회에 나설 계획이다.
허옹은 북청 시절 일본인의 등쌀에 못 이겨 18세 때 동네 청년과 함께 간도로 갔다. 허옹은 당시 젊은 혈기를 못 이겨 간도에서 일본인·중국인들과 싸움도 자주 벌였고 감옥에도 수차례 들락날락했다. 서울 중동중학에 잠시 재학할 때는 육상·축구선수를 겸한 적도 있다.
또 해방 후 성균관대 육상부 코치를 맡아 경수대학 마라톤에서 우승시키기도 했다. 과거 생계는 그의 마라톤 인생을 후원한 전축생산업체 천일사가 상당부분 받쳐줬다.
6·25가 일어나기 전 아내와 사별한 그는 2남 1녀를 뒀다. 그들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다.
딸 채운씨(63)는 특히 정신적·경제적으로 아버지를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육상과 함께」로 요약되는 허옹의 인생은 그의 의지로 만들어 낸 것이어서 뜻이 깊다. 이런 점에서 허옹은 인생의 무게를 개성에 싣는 신세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만 살면 인생은 하나의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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